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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박재홍 파동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by 2021S 2011. 7. 25.
<32> 1차 지명 해태와 계약 파기하고 현대 입단
        “돈 때문이다” 비난 속 ‘호타준족’ 맹활약


1996시즌 약체로 평가받던 해태 타이거즈 우승의 원동력이 ‘팀워크’였다면, 그 끈끈한 팀워크의 ‘본드’ 역할을 해준 이가 박재홍이었다.

광주일고 출신인 박재홍은 4년 전 고졸우선지명권을 통해 이미 해태로부터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연세대 졸업 당시 실업팀인 현대에 입단하며 파란을 예고했다. 이는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기로 하는 전제였고, 그로 인한 계약파동이 한파가 되어 무등산을 꽁꽁 얼리고 말았다.

박재홍의 이 쿠데타적 파동은 타이거즈 1세대 즉, V7의 주역들이 역사 속으로 스러진 자리에 이종범과 더불어 박재홍·김종국·이호성·홍현우 등으로 차세대 막강 타선을 구축하려던 계획에 막대한 차질을 주고 말았다.

고교 시절부터 절친 김종국과 더불어 지역야구의 간판스타로서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박재홍의 거취에 타이거즈 팬들은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박재홍이 열악한 재정 상태로 제대로 대접을 못해주는 해태를 회피하고 넉넉한 재정 상태로 간판스타를 획득하기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지극 정성을 다한 현대를 선택한 것은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일지는 모르겠지만, 동향이자 모교의 선배들인 선동열과 이종범 그리고 절친 김종국 역시 형편없는 대접을 받고도 자신을 키워 준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한다는 명분으로 입단했던 것에 반해 지나친 처사였다는 것이 당시의 지역사회 여론이었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극심한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박재홍이 왜 그런 ‘개성 강한’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지만, 지역민은 물론 특히 직접적으로 심리적 타격을 받게 된 타이거즈 선수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박재홍의 파동’을 지켜본 해태 선수들은 심하게 구겨진 자존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로 삼아 똘똘 뭉쳐 믿기지 않은 V8의 기적을 창출했다.

‘괴물’, ‘리틀 쿠바’ 박재홍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프로야구의 새 지평을 연 ‘30-30클럽’의 시조가 되었을 정도로 ‘호타준족’, ‘클러치 히터’의 대명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당돌한 루키가 리그를 지배하자 타격 폼에 대한 딴지도 걸며 말도 많았지만 박재홍은 전 경기에 출전한 지금까지도 프로야구 유일의 신인 홈런왕이며,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선정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박재홍의 활약이 돋보일수록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은 쓰라렸음은 불문가지이다.

1996시즌 해태는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 지상 최대의 목표인 우승을 일군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년도 입단해 이강철의 후계자로 주목받은 ‘핵잠수함’ 임창용이 첫 승 포함 7승을, ‘비운의 영건’ 김상진이 9승을, ‘스나이퍼’가 된 장성호가 홈런 2개를 신고하는 등 꿈나무 3인방이 주목을 받은 해이기도 했다.

/김재요 조선이공대학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11260400441027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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