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이야기

고맙고.. 죄송합니다.

by 2021S 2011. 9. 7.


나는 복이 많은 기자다.

특별한 재능도 그렇다고 세심한 인간관계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하는 것에 비해서 많이 가졌다.

지역지라는 특성상 담당하는 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지만 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도 나는 많은 인연 속에서 즐겁게 일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일로 맺어진 인연들이 아프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 그래서 올해는 더 많이 아프고 힘든 해.

장효조 감독님 별세 소식에 펑펑 눈물을 쏟았다.

한 번이라도 전화라도 드릴 걸. 푹 쉬시고 돌아오시라고 문자라도 보낼 걸...

감독님과의 인연은 2007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부 막내 기자였는데 회사에서 주최하는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지원을 나갔다. 1주일 내내 야구 보러 간다고 신이 났던 나.. 그때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그때는 스카우트로 꼬꼬꼬마들 찾으러 전국을 누비실 때였다.

무등기하면 각 팀 감독님들 야구 관계자들 8개 구단 스카우트는 물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도 오곤 했다. 다.. 남자들.

남자들 무리에서 초보 여기자가 눈이 빠져라 야구 보고 선배 지시하는 대로 인터뷰도 하고 야구장을 지키고 있다 보니 어르신들이 많이 예뻐해 주셨다. 심심할까 봐 장난도 치시고 야구도 가르쳐주시고.

선배의 지시로 장효조 스카우트 인터뷰를 했었는데 직책을 잘못 표기했다. 내가 글로 승진을 시켜드렸다. ^^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프로야구 역사를 상징하는 레전드라는 무게감에 무뚝뚝하니.. 어렵게 느껴졌던 분. 바로바로 다음날 기사들 정독들 하시는 터라 긴장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썼는데.. 실수를 했다.

그때 다른 스카우트 분들이 승진 시켜드렸다고 많이 놀렸다.. 감독님도 항의 아닌 항의도 하시면서 내가 무안할까 봐 오히려 장난을 거시기도 하고.

다음 해 내가 야구 담당을 하게 되면서.. 3년 동안 무등기가 열리는 6월이면 감독님과 재회를 했고, 감독님은 틈이 나는 대로 나를 구박하셨다. 그게 감독님의 애정 표현이었다.

대회가 열리는 1주일가량 오전부터 저녁까지 나란히 앉아 야구를 보다 보니.. 일 끝내시고 광주를 떠나실 때는 무척이나 서운해서 한참 동안 인사를 하면서 섭섭해했었다.

지명회의 때 얼굴 보이시면 반가움에 전화드려서 안부 여쭙기도 하고. 지난해 현장으로 돌아오신 뒤로는 그라운드가 재회의 장이 됐다.

 

지난해 5월 강진에서 찍은 사진이다.

감독님이 보고 싶어서 강진 경기 언제 있나 언제 있나. 살펴봤었는데 삼성이 강진에서 훈련을 했었다. 마침 퓨처스리그 인터리그도 열려서 강진에 갔다가 뵌 감독님.

박진만 붙잡고 타격 훈련하고 계시던 감독님. 그물에 붙어서 훈련을 보고 있었는데 금세 알아보시고 아이구 이게 누구야! 하면서 반가워해 주셨다.

삼성하고 2군 홈경기 언제 있나 뒤적뒤적. 올해도 삼성과 경기 있는 날 맞춰서 2군 경기 보러 나가기도 했다.

감독님을 마지막으로 뵌 건 7월 9일.

무등경기장 원정 관계자실에서 홀로 담배를 태우고 계셨던 감독님. 내가 쓱 들어가자 급히 담배를 끄시더니 손을 내밀며 언제 왔느냐고 맞아주셨다.

레전드 올스타에 뽑히신 것 축하드린다고 했더니 쑥스러워하시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 그리고 그다음 날인가 레전드 올스타 사진 촬영을 하러 가셨을 것이다.


반듯반듯한 머리..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겉으로 보기에는 참 무뚝뚝하고 어려운 분이시지만, 그 뒤에는 따뜻한 정이 가득했다. 어쩌다 뵙고 전화를 하더라도 특별한 말씀도.. 긴 얘기도 없으셨지만.. 짧은 말과 표정만으로도 그분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스카우트 장효조도 그랬었다. 반듯한 모습 강한 모습이시기를 원하셨던 터라 많은 표현은 안 하셨겠지만 선수들을 애정 있는 눈으로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시기도 했다.

팬들에게 소홀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기에.. 늘 최선을 다해 그라운드를 뛰셨다는 장효조 감독님. 학생들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것도 노력, 열의였다.

올스타전이 끝난 직후에 감독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아니길.. 잘못된 소문이기를 바랐는데.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말씀을 아끼시면서 병원에 계신다는 얘기. 전화도 아니 받으신다는 얘기에 부담이라도 될까 봐. 신경 쓰셔서 더 아프실까 봐 연락도 못 드리고 있었다.

많이 안 좋으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가버리실지는 몰랐다. 조금 더 있다가 마음 조금 더 편해지시면 전화드려야지.. 날 좋은 날 바깥 사진 찍어서 보내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시간도 주질 않고 가셨다. 정말 가셔 버렸다.

야구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라운드 위에서 그리고 팬들 앞에서 늘 최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고 그래서 외로웠을지도 모를 장효조 감독님. 이젠 아프지도 외롭지도 마세요.

감독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일 뵈러 갈게요.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세요.


코치님 잠시만요.

와.

사진 좀 찍으시게요.

무슨 사진. 아이고 됐다.

빨리 오시라니까요.

됐나. 허허.

............ 그렇게 남은 .. 사진이다.

728x90
반응형

'야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삼촌은 이종범 롤모델은 이대호  (4) 2011.12.14
독수리 삼형제  (7) 2011.12.07
어린이날 특집 3.  (8) 2011.05.06
어린이날 특집 2.  (4) 2011.05.05
어린이날 특집 1.  (7) 201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