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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1997 외환위기와 해태의 쇠락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by 2021S 201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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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은 연말에 터진 ‘IMF 외환위기’와 맥을 같이 한 지각 변동이 프로야구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한보·기아·쌍방울 등의 부도 여파가 해태에게도 미쳐 위험하다는 설이 프로야구계에 파다하게 퍼져있는 가운데 해태 타이거즈는 선수를 팔아 연명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쌍방울이 주포 박경완을 현대에 현금 9억 원에 내다 판 것과 해태가 팀의 간판 스타이자 팀의 정신을 상징하고 팀에 108승을 안겨준 조계현을 삼성에 현금 4억 원에 내다 판 것은 모기업이 그만큼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는 징후였다.

그리고 해태가 1997시즌 종료 후 선동열에 이어 이종범까지 일본 주니치에 저항 없이 내준 것도 그 이면에는 현금 확보에 목적이 있었고, 그 후에도 1998시즌 종료 후 ‘샛별’ 임창용에 대한 삼성에 현금 묶인 팔아넘기기가 있었고 그것으로 해태의 운명은 쇠락을 예고했다.

모기업이 그런 와중에 있었으니 지역의 간판 스타였던 서재응에 이어 김병현 그리고 다음해는 최희섭 등을 줄줄이 미국에 빼앗기는 아픔을 맛보았고 팬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었던 해도 1997년이다.

그 선수들이 처음부터 메이저 리그를 목표로 했던 경우라기보다는 지명권을 가진 구단이 그에 상응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지 않고 심정적인 동정에만 기대했다는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서재응·김병현·최희섭 등 모두 해태의 지명을 받고 입단을 전제로 무등경기장 야구장 기록실에 앉아 함께 뛸 선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던 것처럼 그들은 모두 해태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유기로 인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거가 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고 훗날 금의환향해 환대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그들을 지명한 구단이 재정 상태가 넉넉한 타구단이었다면 그들 모두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1997년 6월18일 대구에서 열린 해태와 삼성의 혈투는 많은 걸 시사해주었다.

이날 해태는 이종범(2개)·김창희·장성호·이호성이 5개의 홈런을 때렸고, 삼성은 양준혁(2개)·김한수·류중일·신동주·최익성이 6개의 홈런을 만들었다. 이날 두 팀은 11개의 경기최다홈런 신기록을 작성하며 연장 10회 13-13의 시간제한 무승부경기를 펼쳤다.

1997시즌 ‘야구 천재’ 이종범이 5월18일부터 시작한 지금도 깨지지 않은 연속도루성공 29개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시즌 종료 후 선동열이 미리 가 있던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타이거즈 팬들의 희망이었던 이종범은 5시즌 동안 평균타율 0.332, 홈런 106개, 도루 310개의 기록을 남겨두고 일본으로 갔다.

<김재요 조선이공대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1186520044184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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