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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1998시즌 지친 호랑이 ‘이빨 빼기’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by 2021S 2011. 8. 4.
<36>14년 만에 5위 추락 ... 임창용마저 삼성으로


1998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총 14명의 선수로 ‘프로야구 판’에 뛰어들었던 원년인 1982년과 첫 우승을 차지한 후유증을 겪었던 1984년에 이어 또다시 승률 4할대와 14년만의 5위 추락이란 쓰라린 훈장을 받았다.

‘전통의 명가’ 해태가 IMF외환위기로 ‘팀 전력의 반’이라는 이종범을 일본에 넘겨주면서 예고됐던 몰락 현상이 여실히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해태는 그래도 시즌 막바지까지 두산과 치열한 4강 티켓을 놓고 경쟁을 펼쳤지만 벽을 넘지 못하고 5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무등산 호랑이는 이후 2000년까지 해태 옷을 입고, 또 2001년 KIA로 옷을 갈아입기까지 4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하위권에 머물면서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을 쓰라리게 했다. 또한 골든글러브의 ‘단골손님’ 해태는 이 기간 동안 단 한 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1998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태는 최희섭·이현곤·강철민 등을 지명하였으나 미국진출이나 대학진학으로 발길을 돌리는 바람에 전력 보강에 실패했다. 더구나 팀 전력에 폭발적인 영향력을 미쳤던, 첫 시행되어 두 명까지 출전시킬 수 있는 용병선발에서도 재정난 때문에 그것도 시즌 초가 아닌 6월에서야 숀 헤어 한 명만을 영입하는 소극적인 전력보강으로 비난을 샀다.

현대가 일약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트롱과 쿨바의 투타에 걸친 맹활약에 힘입은 용병 농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두산의 우즈, 삼성의 베이커, 한화의 치멜리스 등이 용병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해태는 숀 헤어를 뒤늦게 허겁지겁 리그에 투입했으나 29경기에 출전 무홈런 0.206의 기록을 남긴 채 ‘손해여∼’라는 비아냥을 사며 퇴출당하고 말았다.

관중수가 60%나 격감된 가운데 그나마 타이거즈 팬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임창용·이호준·장성호가 희망의 싹을 보여준 것이다. 진흥고출신 임창용은 방어율 1.89에 2년 연속 40SP, 광주일고출신 이호준은 타자로 전향해 안착하며 0.303타율 19홈런 77타점, 충암고출신 장성호는 0.312타율 15홈런 49타점의 성적을 냈다.

그리고 분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던 연말에 두 가지 암울한 소식이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에 큰 구멍을 내고 말았다.

하나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센트럴리그의 1위 독주의 영웅 야쿠르트 스왈로스 멤버가 되어있는 임창용과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곽채진·황두성+현금 10억의 트레이드 소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전년도 한국시리즈 최종전서 승리투수가 되어 마운드에서 환하게 웃던 ‘비운의 영건’ 김상진의 ‘위암말기’ 소식이었다.

전년도부터 진행해 화두가 되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호랑이 털갈이’는 ‘호랑이 이빨빼기’로 귀결되면서 암울한 1998년이 되고 말았다.

/김재요 조선이공대학교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124664004425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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