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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57

현대, 한국시리즈 2연패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시간제한’ 2차례… 9차전까지간 피말리는 승부 8대7 ‘케네디 스코어’로 삼성 꺾고 감격의 V4 2004시즌 디펜딩 챔피언 현대 유니콘스는 2003시즌에 이어 페넌트레이스 1위와 한국시리즈 쳄피언 자리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최강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현대의 우승이 값진 이유는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전력의 유출은 있고 수혈이 없는 상태에서 고참들이 근성의 야구로 일궈낸 결과였다는 것이다. 현대가 구멍 뚫린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프런트에서 신인왕에 오른 오재영과 에이스 역할을 해낸 용병 피어리를 픽업해 공급해준 역할이 컸다. 좌완 오재영은 10승9패(방어율 3.99, 113탈삼진), 피어리는 16승6패(방어율 3.32, 130탈삼진)의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이 지역 순천 효천.. 2011. 9. 27.
SK와의 악연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거포 박재홍·특급 마무리 진필중 영입불구 ‘데이터야구’ SK에 플레이오프 3연패 쓴 맛 2003시즌 KIA 타이거즈는 우승을 위한 마지막 한 장의 히든카드를 받기위해 올인하는 과감한 배팅을 했다. KIA는 오랜 숙원이던 거포와 마무리 부재를 해결하기위해 거액을 들여 선수 영입에 나섰다. KIA의 전신인 해태시절 ‘선수 팔아먹기’에 익숙하던 팬들은 ‘선수 사오기’에 다소 어색한 반응이었지만 그 거래 내용이 워낙 빅 이벤트였기 때문에 기대도 그만큼 컸다. KIA는 거포 박재홍을 영입하기 위해 내야수 정성훈에 10억을, 특급 마무리 진필중을 영입하기 위해 김창희+손혁에 8억을 얹어주는 큰 손 거래를 성사시켰다. KIA는 검증된 3할 타자이자 3루수인 싱싱한 정성훈을 내주면서 입단거부와 강한 개성으로 팀 분위기.. 2011. 9. 23.
2003시즌 현대 내우외환 속 KS 제패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눈물의 우승컵 故 정몽헌 구단주 영전에 2003시즌 현대 유니콘스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정몽헌 구단주의 갑작스러운 타계와 모기업의 재정난 등으로 인한 내우외환을 극복하고 값진 우승을 일궈냈다. 현대는 페넌트레이스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마저 재패하며 21세기 ‘신흥 명문 구단’으로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다. 또한 80승 중 반이 넘는 41승을 극적인 역전승으로 장식하며 끈질긴 뒷심의 ‘현대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개막전 현대의 전력은 전년도 4위 성적에 별도의 선수 보강 없이 FA 최대어였던 박경완을 잡지 못하고 SK에 빼앗긴데다, 타선의 핵이었던 박재홍의 ‘선수 팔아 연명하기’ 등의 악재가 겹친 것에 비해 실로 극적인 대반전이었던 것이다. 현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컴백한 정민태의 다승(1.. 2011. 9. 20.
2002 시즌 5년만에 PS 진출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초반 불꽃기세로 2위 … 플레이오프 LG에 덜미 2002시즌 KIA 타이거즈는 유니폼을 바꿔 입고 2년 만에, 97년 우승 후 5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그동안 응어리진 팬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시즌 개막전 ‘다크호스’정도로 평가받았던 KIA 타이거즈는 전년도 우승팀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 3연전서 전승을 거두는 등 4월 한달 불꽃같은 기세로 13승1무6패의 성적을 거둬 1위에 올라 심상치 않은 행보를 시작했다. KIA의 5월 성적은 13승11패. 에너지가 소모될 시점인 6월에는 한일월드컵경기로 인한 ‘징검다리 일정’의 수혜로 15승1무5패의 성적을 거둬 1위 자리를 재탈환할 수 있었다. 선발 자원 부족으로 터덕거릴 시점에서 키퍼·김진우·최상덕 등의 선발진, 이강철·박충식·곽현희 등의 미들맨과 마.. 2011. 9. 15.
‘김응용 효과’ 21년 만에 恨 풀다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 2002 시즌 삼성 우승 2002시즌은 역사적인 한일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등으로 프로야구의 흥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하는 염려 속에 개막되었다. 결과는 절묘한 조화를 이뤄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며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스포츠 마니아로 응집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유명한 ‘대∼ 한 민국’은 4강 기적을 연출하였다. 아시안 게임 야구에서는 대만을 4-3으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스포츠를 문화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2002시즌 삼성 라이온즈는 고진감래로 21년의 ‘무관의 제왕’의 설움에서 벗어나며 ‘제일주의’의 그룹 이미지를 한껏 고양시키는데 성공했다. 삼성은 최상의 지원과 우수한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유난히 큰 경기에 약한 면모를 보이며 번번이 고지 점령에 실패하며 분루를 삼켜야만 했었는데 2002년.. 2011. 9. 5.
KIA 타이거즈 출범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해태 타이거즈 ‘V9 신화’ 남기고 역사속으로 KIA 의욕넘친 출발 … PO 진출 반발짝 부족 2001년은 해태 타이거즈가 ‘V9의 무등산 신화’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해태 정신’을 승계한 KIA 타이거즈가 출범한 새로운 원년이 되는 해다. 1997년 11월 IMF외환위기와 함께 모기업의 부도로 극심한 자금난에 허덕이며 선수를 팔아 근근이 연명하던 해태가 공개 매각에 나섰고, 2001년 5월 29일 기아 자동차(회장 정몽구)가 타이거즈 구단을 인수한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같은해 7월 31일 KBO의 최종 가입승인을 받아 KIA 타이거즈로 리그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아 자동차가 KBO에 제출한 팀 창단금액은 해태 인수대금 180억 원과 KBO 가입금 30억원 등 총 210억 원이었다. 이 .. 2011. 8. 25.
승률 0.508 … 3위팀 기적의 KS 우승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2001 시즌 두산 V3 21세기의 서막이자 세 번째 밀레니엄시대를 맞이한 2001시즌 두산 베어스는 끈끈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열세를 반전시키며 극적인 우승을 차지해 화려하게 새로운 세기를 열었다. 2년간의 양대리그제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후, 단일리그제로 환원된 첫 해인 2001시즌 두산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페넌트레이스 최저 승률(0.508, 3위)로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두산은 1위 삼성(승률 0.609)에 무려 13.5게임, 2위 현대(승률 0.558)에게도 7.0게임차의 승차로 뒤진 상태에서 한국시리즈를 통해 기적의 우승을 연출해낸 것이다. 2001시즌 두산의 극적인 드라마의 연출자는 ‘덕장’ 김인식감독이었고 투타의 주연은 진필중과 윌리엄 타이론 우즈였다. 특급 마.. 2011. 8. 22.
트레이드 파문이어 김응용 감독 삼성행 -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암울했던 2000시즌 2000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팔려고 내놓은 집처럼 어수선했고, 문제는 산재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옳을지 모르는 황망함이 처처에 묻어있었다. 해태는 안 되는 집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처럼 전 시즌부터 시행해 오던 양대 리그제의 조 편성을 재조정했는데, 드림리그의 강력한 우승 후보군인 현대·두산·삼성 등과 한조로 편성되는 불운을 안고 시즌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종합 승률에서 현대·두산·삼성 순으로 귀결되었고, 매직리그 1위인 LG의 승률(0.515)이 드림리그 3위인 삼성의 승률(0.539)보다 처졌으니 최약체의 전력으로 평가되던 해태의 고전은 명약관화했던 것이다. 해태는 소속된 드림리그 팀들 간의 전적에서는 현대(2승17패)·두산(6승13패)·삼성(7승1무11패).. 2011. 8. 20.
현대 유니콘스 V2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 약체 예상 뒤집고 용병들 맹활약 20세기말, 2000시즌의 화두는 현대 유니콘스의 또 한 번의 화려한 비상쇼였다. 현대는 대다수 전문가들의 ‘4강 전력 이하’라는 예상을 비웃듯, 시즌 최다승(91승) 신기록을 작성하며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현대가 보여준 경기력은 페넌트레이스는 ‘완벽’, 포스트시즌은 ‘압도’였다. 현대는 V2와 더불어 투타에 걸쳐 8명의 타이틀 홀더를 배출했고 5개의 골든글러브라는 전리품도 챙겼다. 박경완은 15년 만에 이만수에 이은 포수 홈런왕(40)과 페넌트레이스 MVP, 박종호는 타격왕(0.340), 박재홍은 타점왕(115), 정민태·김수경·임선동은 공동 다승왕(18), 임선동은 탈삼진왕(174), 조웅천은 첫 시행된 홀드왕(16)에 등극하였다. 현대는 미국산 용병인 퀸란(37.. 2011. 8. 15.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퇴장 당한 김응용 감독 감독·코칭스태프 전원 퇴장 ‘초유의 사태’ 1999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내우외란에 휩싸인 총체적 난국에 빠져 ‘달콤한 꿈’ 한 번 꾸어보지 못하고 드림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고 말았다. 해태는 2년 연속 40SP 이상을 기록하며 언터처블러로 성장한 ‘핵잠수함’ 임창용을 삼성 라이온즈에 팔아넘기고 마무리 불안으로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99시즌 ‘투수왕국’ 해태에서 10승대 투수가 단 한 명만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곽현희가 11승11패 방어율 6.15로 팀 내 최다승투수이자 에이스였으니 타이거즈 팬들의 그 해 여름이 얼마나 무더웠을지 짐작할 것이다. 4월에는 장성호·양준혁·홍현우·정성훈·김창희·샌더스·브릭스·이호준·박계원 등 타력의 힘으로 5할 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4월30일 .. 2011. 8. 12.
1999년 ‘양대리그제’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 30년] 용병농사 잘한 한화 창단 14년만에 첫 우승 1999시즌은 양대리그(드림-매직)제를 도입한 원년이었다. 양대리그제는 8개 팀을 4개 팀씩으로 나누고 인터리그를 포함한 페넌트레이스를 펼쳐서 각 리그 1위와 2위 팀을 가려 크로스로 플레이오프전을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드림리그에는 해태·롯데·두산·현대가 매직리그에는 한화·삼성·LG·쌍방울이 소속되었다. 팀 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졸속으로 만들어진 ‘어설픈 양대리그제’는 다음 해인 2000년까지 시행되다 원제도로 되돌아가게 된다. 1999시즌 한화 이글스는 4전5기의 불굴의 정신과 양대리그제의 수혜로 창단 14년 만에 감격적인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화 첫 우승의 씨앗은 파종 잘한 용병농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로마이어(0.292 45홈런 109타.. 2011. 8. 8.
1998시즌 지친 호랑이 ‘이빨 빼기’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14년 만에 5위 추락 ... 임창용마저 삼성으로 1998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총 14명의 선수로 ‘프로야구 판’에 뛰어들었던 원년인 1982년과 첫 우승을 차지한 후유증을 겪었던 1984년에 이어 또다시 승률 4할대와 14년만의 5위 추락이란 쓰라린 훈장을 받았다. ‘전통의 명가’ 해태가 IMF외환위기로 ‘팀 전력의 반’이라는 이종범을 일본에 넘겨주면서 예고됐던 몰락 현상이 여실히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해태는 그래도 시즌 막바지까지 두산과 치열한 4강 티켓을 놓고 경쟁을 펼쳤지만 벽을 넘지 못하고 5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무등산 호랑이는 이후 2000년까지 해태 옷을 입고, 또 2001년 KIA로 옷을 갈아입기까지 4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하위권에 머물면서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을 쓰.. 201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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