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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4> 타이거즈 첫 게임

by 2021S 2011. 4. 14.

원년 해태 타이거즈의 선수 수는 몇 명이었을까?

2011년 현재 KIA 타이거즈의 등록선수 수는 투수 28명, 야수 33명의 합인 61명이다. 8개 구단이 대부분 60여 명 선으로 선수단을 구성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원년의 해태 타이거즈는 투수 6명, 야수 14명의 합인 20명으로 프로야구팀을 창단하여 리그에 참여했다. 투수 6명 중에는 김성한이 포함되어 있으니 김성한이 야수로 이동하면 투수는 고작 5명인 것이다. 코치는 조창수와 유남호 단 2명이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원년 멤버는 투수 강만식 김성한 김용남 방수원 신태중 이상윤, 야수는 김경훈 김봉연 김용만 김우근 김일권 김종모 김종윤 김준환 박전섭 임정면 조충열 차영화 최영조 홍순만 등이다. 해태의 김씨 일가는 원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듬해 재일동포 ‘스마일 포수’ 김무종의 입단과 롯데에서 김일환까지 이적해와 김씨 일가가 10년 세도를 부리게 된 것이다.

대망의 해태 타이거즈의 첫 공식경기는 1982년 3월28일 일요일 부산(구덕)구장에서 대 롯데전으로 시작되었다. 방수원과 노상수의 선발 맞대결로 시작된 역사적인 첫 판은 해태 타이거즈가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인 1회에만 7실점하는 등 난타를 당하며 롯데 자이언츠에 2-14로 참패하면서 그 서막을 해운대 앞바다에 고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선발 라인업은 차영화(4) 조충열(6) 김성한(5) 김봉연(3) 김준환(DH) 김종윤(9) 김우근(8) 박전섭(2) 김종모(7)이었고, 부산 갈매기 1만1428명이 지켜보았다. 김성한은 3루수로 출장해 3타수1안타1타점을 기록했고, 6회부터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동안 무안타 무실점 호투로 양수겸장을 했는데 이를 잘했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렇듯 초라하게 시작했던 타이거즈가 ‘V10’을 이룩하며 명문구단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것은 ‘타이거즈 정신’과 열화와 같은 팬들의 성원이 응집된 결과일 것이다. 필자는 원년부터 야구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그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등 해태 타이거즈의 발전과 팬들의 상식을 고양시키는데 일조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는 열악한 토양 위에서도 전후기 통산 4위를 차지했고, 김봉연이 홈런왕(22개), 김성한이 타점왕(69타점), 김일권이 도루왕(53개)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차영화는 2루수, 김준환은 우익수부문에서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은 요원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재요 조선이공대 교수. 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2703200430117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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