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프로야구30년 기아타이거즈30년]<8> 해태 ‘불고기 화형식’

by 2021S 2011. 4. 28.

1984시즌 해태 타이거즈는 전년도 우승의 프리미엄으로 공식 개막전을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갖게 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전년도 최하위 롯데 자이언츠를 홈으로 불러들여 2경기 연속 완봉승(1-0, 2-0)을 거두며 상큼하게 출발했다. 이 두 경기에서 팀 주력 투수인 이상윤과 김용남은 각각 5피안타와 4피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개막전에서 이상윤과 최동원의 피 말리는 완투대결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 시리즈 2연패 꿈은 MBC 청룡과의 첫 원정 3연전서 내리 3연패(1-2, 3-4, 1-7)를 당하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3연패란 기록도 그렇지만 완봉승을 거둔 이상윤이 불과 이틀을 쉬고 사흘 만에 구원투수로 나서 4이닝 이상을 던지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김용남 역시 이틀을 쉬고 사흘 만에 등판해 구원패, 그리고 구원패한 다음날 또다시 선발투수로 나서 선발패 하는 등 상식을 뛰어 넘는 무리수를 둔 결과가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시는 투수들의 기량 차가 너무 심해 한 두 투수가 혹사당하는 양상이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특히 신인들의 보강이 절대 부족해 혹사를 당했던 그 주축 투수들은 고장 난 어깨를 훈장처럼 가슴에 묻고, 몇년 후 소리 소문 없이 그라운드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다.

해태 타이거즈는 전년도 우승의 여파를 활용하지 못한 채 전기를 5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1983시즌의 해태 타이거즈 타자들이 용광로처럼 불태웠던 불망이는 엿 바꿔먹었는지 온데간데없고 패배의식만 깊어 갔다. ‘타격의 교과서’ 김종모만이 타율 0.316, 14홈런, 44타점으로 2년 연속 3할타자로 제 몫을 해냈을 뿐이었다.

해태 타이거즈 타자들의 슬럼프는 타격 기술에 의한 문제가 아니고, 전년도 우승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사정은 더 나빠지고 메리트 시스템도 아예 사라지자 구단에 대해 벌인 선수들의 ‘사보타주’였음을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 사건의 발단은 박건배 구단주가 마련한 회식자리에서의 ‘불고기 화형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마추어때부터 실력과 더불어 항명과 이탈의 대명사인 ‘풍운아’ 김일권이 선수들을 주동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야구사에 기록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후기에 심기일전해서 ‘컨트롤의 귀재’ 강만식(11승4패)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지만, 선수들의 기량 못지않게 팀워크가 경기력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교훈으로 남기고 후기 3위로 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김 재 요-조선이공대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391640043165901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