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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12> 해결사 한대화

by 2021S 2011. 5. 12.
해태 타이거즈의 1986시즌은 한대화의 트레이드 거부 파동으로 문을 열었다.

1982년 서울서 개최된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숙적 일본과의 결승전 극적인 3점홈런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대전고-동국대 출신의 국가대표 한대화가 1983년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단했던 한대화는 김성근 감독의 훈련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비주류로 홀대받으며 세 시즌동안 0.256(8홈런)이란 초라한 성적을 냈다.

해태는 양승호-황기선을 OB에 내주고 한대화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내야수비와 중심타선 강화를 꾀했다. 그러나 한대화가 신생팀이자 고향팀인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하기를 희망하며 해태로의 이적을 거부하는 소동이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달여 만에 이적에 동의하면서 ‘한대화 트레이드 거부’파문은 일단락됐다.

이 파동은 훗날 트레이드 거부 파동의 원조가 되었고, 한대화는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고향 팀으로 23년 후에야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한대화의 이적으로 한숨을 돌린 해태는 이번에는 내홍을 겪어야만 했다.

‘박힌 돌’ 이순철과 ‘들어 온 돌’ 한대화 간의 3루수 자리다툼이 그것이었다. 3루수 자리가 겹쳐 둘 중 하나는 외야로 이동해야하는 상황에서 둘의 자존심 대결을 곁에서 지켜보던 필자는 이순철과 한대화를 증심사 길목인 ‘운림각’이란 레스토랑으로 초대해 둘 사이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냈다. 필자가 제안한 것은 주력과 재치가 빼어나 외야수비가 가능하니 아우인 이순철이 미래를 보고 한 발 양보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순철은 중견수로서, 한대화는 3루수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스타로 야구사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훗날 ‘3루수-해결사’ 영입과 ‘박힌 돌, 굴러온 돌’의 아이러니는 김상현(LG)과 이범호(소프트뱅크)로 이어진다.

또한 ‘해결사’가 영입된 시즌에는 타이거즈가 우승을 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 이 근거를 믿고 필자는 올 시즌 KIA 타이거즈의 우승을 예견한 바 있다.

이 과정을 계기로 필자와 한대화·이순철·선동열은 의형제연으로 정을 나누고 있고, 명품 아우 셋은 모두 프로야구의 꽃인 감독직을 수행하거나 수행한 바있다.

김씨 왕조에 한·이·선이란 명제상들이 가세하여 해태의 명가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었다. 1986시즌 한국 시리즈에서도 이 세 선수와 ‘가을 까치’ 김정수의 활약으로 4연패의 신화 창조의 서막을 올렸다. ‘해결사’ 한대화는 승리타점(16) 1위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김재요 조선대이공대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520880043334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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