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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14> 타이거즈 정신

by 2021S 2011. 5. 19.
1987년 해태 타이거즈는 시즌 내내 전년도 우승 후유증을 심하게 앓아야만 했다. 핵심 전력인 선동열은 개막 이틀 전에야 연봉협상이 타결되는 등 전반적으로 스프링 캠프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불안한 상태로 시즌을 맞이해야만 했다.

호사다마라고 전년도 한국 시리즈의 영웅이었던 김정수는 왼손혈행장애, 김성한은 최동원의 투구에 맞아 손목 부상, 김종모는 의사장티푸스 그리고 문희수·강상진·장채근 등의 입원으로 팀 주축 선수들이 장기간 전력에서 이탈하는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신진대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으로 베테랑 김용남과 강만식이 빙그레 이글스로 트레이드되는 아픔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수혜를 입어 아슬아슬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다.

전주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이 하이라이트였다. OB 베어스가 3-2로 앞서던 9회말 2사 3루에서 김성한이 평범한 유격수 내야땅볼을 쳤다. 그러나 OB 유격수 유지훤이 귀신에 홀린 듯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주춤거리다 타구를 잡아 뒤늦게 1루에 송구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필사의 역주’를 한 김성한은 1루에서 세이프되며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 10회말에 OB 최일언의 폭투로 4-3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 승리는 해태가 최일언에게 전년도부터 12연패를 당한 설움을 씻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해태는 개성이 강한 선수 개인의 특성을 선·후배간의 엄격한 위계질서로 승화시켜 팀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묘한 마력을 지닌 팀으로 인식되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쯤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훗날 개인플레이 성향이 짙은 타 팀 선수들이 해태로 트레이드되면 마치 지옥에라도 가야하는 것처럼 인식하여 매번 트레이드를 거부하는 촌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해태 주축 선수들을 지켜보면 하나같이 개인적인 능력이 빼어나 개인플레이로 분위기를 망칠 것 같지만, 막상 경기에 임하면 거미줄처럼 끈끈하게 뭉쳐 상대 팀을 압도했다.

이러한 무형의 자산을 ‘타이거즈 정신’이라 칭한다면, 훗날 삼성 라이온즈는 이 독특하고 귀한 자산을 막대한 현금으로 이전해 ‘한국 시리즈를 통한 우승’이란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해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1986년 8월 27일 빙그레 이글스(광주)와의 경기부터 1987년 4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사직) 경기까지 무려 49와 3분의2이닝 동안 무실점이란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재요 조선이공대학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58136004341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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