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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 ‘5월무적’ 해태 12연승 … 김대현 교통사고 사망 ‘충격’

by 2021S 2011. 5. 27.

 <16> 88시즌의 명암

1988시즌 프로야구는 서울올림픽과 상생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며 막을 내렸다.

해태 타이거즈는 4월17일 안방인 광주에서 에이스 선동열을 내세우고도 빙그레 이동석의 ‘아리랑’ 볼에 농락당하며 무4사구 노히트 노런의 수모를 당한 이후 극심한 타격 침체에 빠졌다. 5월부터는 ‘해결사’ 한대화를 중심타선에 배치하면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해서 12연승(1무포함)으로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5월의 타이거즈가 강하다는 전통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기에는 ‘노지심’ 장채근이 김무종의 부상으로 주전 자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육중한 몸무게만큼 거포 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7월 한 달에만 9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8월6일 OB전서 홈런 한 개를 추가한 장채근은 19호 홈런으로 팀 동료 김성한과 공동 선두가 되며 치열한 홈런 레이스를 펼쳤다.

유난히 더웠던 한 여름의 태양열처럼 뜨거웠던 홈런레이스는 노련한 김성한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필자는 지금도 두 홈런 타자의 보이지 않는 불꽃 튀는 경쟁으로 덕아웃 주위에 팽배해 있던 공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두 거포의 선의의 경쟁은 홈런최다신기록이란 전리품을 얻기도 했다.

빙그레 ‘악바리’ 이정훈 이전의 ‘원조 악바리’ 김성한이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30홈런이란 이정표를 세우며 홈런킹을 차지한데다, 장채근(26)·한대화(18)·이순철(13) 등이 전인미답의 팀 1백 홈런을 달성해 팬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1988년 8월27일에는 ‘김대현 교통사고 사망’이란 충격적인 뉴스가 전파를 탔다.

전주고-원광대를 거쳐 1986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던 김대현은 190㎝에 가까운 훤칠한 키와 핸섬한 마스크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입단 2년차에 9승을 거두며 투구에 눈을 떴고, 사고를 당하기전 7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풍운아’ 김대현이 세상을 떠났다는 갑작스런 소식이 팬들을 경악시켰다. 김대현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쾌남형의 외모와 승부를 피하지 않는 공격적인 피칭으로 강타자들과 한 판 대결을 펼치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김대현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은 사고 전날이 8월26일 전주에서 삼성전이 있던 날이었다. 당일 일찍 전주 구장에 도착했던 필자에게 경기가 없던 김대현이 찾아와 어머니를 좀 만나고 오겠다며 승용차를 빌려달라하며 환하게 웃던 것이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김대현은 경기 후 광주로 돌아와 이순철과 다음 경기(MBC전)가 있는 서울로 미리 이동하기 위해 심야에 승용차를 운전해가던 중 천안삼거리 휴게소를 진입하다 주차해있던 트럭 밑으로 들어가는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 백넘버 28번 김대현이 16승을 남겨주고 꽃을 채 피우지 못한 채 타이거즈 팬들의 곁을 떠났던 해도 1988년이었다.

<김재요 조선대이공대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64220004348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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