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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무등산폭격기 선동열도 속수무책 <20>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by 2021S 2011. 6. 9.
1990년 플레이오프 - 소수정예 한계 … 해태 V5 꿈 실패

1990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4연패-V5팀의 포효를 제대로 내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무너진 한 해였다. 이는 ‘백년지대계’의 준비가 부족했던 해태 프런트의 지원 문제이기도 했지만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선수들의 정신 상태의 문제이기도 했다.

타 팀은 매년 신인을 많게는 10명 정도로 보강해 전력의 누수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했으나 해태는 매년 3∼4명의 신인만을 뽑았다. 예상치 못한 주전 부상의 경우 전력차질이 예상되는 데도 구단은 ‘재정난’을 이유로 소수 정예방침을 고수했다. 무대책의 하책일 수밖에 없었다.

주전급 선수들 사이에는 ‘나 아니면 안돼’라는 안일함이 팽배했는데, 이는 애당초 플래툰시스템을 적용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구단이 지원한 여건대로 순응했던 김응용 감독의 ‘부족한 숫자는 질로 메운다’라는 전술이 한계에 부딪힌 한 해가 되고 말았다.

특히 마운드의 로테이션은 3연전을 치르고 나면 바닥나기 일쑤였다. 선동열(22승)과 이강철(16승), 조계현(14승) 등의 빅3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마운드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이들 외에 1승 이상의 승리를 거둔 선수가 단 5명에 불과했다.

타자들은 한대화·이호성·백인호·김종모·박철우·김성한·윤재호·이순철 등만이 거의 붙박이로 출장했고, 이들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을 때, 대체요원들의 함량미달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에 입단해 기대를 모았던 신인으로는 이호성·정회열·홍현우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페넌트레이스 1위를 LG에 내준 해태는 2위의 지위로 준플레이오프전서 빙그레를 격파하고 올라온 삼성과 플레이오프전을 갖게 되었다.

해태는 플레이오프 1차전서 선동열이 9번 김용국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등 구원실패로 1-4로 패했다. 2차전서는 조계현 등 5명의 주력투수를 모두 투입하고 김성한·장채근·홍현우의 홈런포 지원을 받았으나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 투입된 선동열이 또다시 김용철에게 동점 투런을 허용한데다, 연장 11회 초에 결승 희생플라이까지 허용하며 7-8 케네디 스코어로 석패했다.

‘무등산폭격기’ 선동열은 페넌트레이스에서 190과 3분의1이닝 동안 단 한 개만 허용했던 홈런을 2연속 경기에서 허용하며 패장의 멍에를 써야만 했다. 벼랑 끝에 몰린 3차전서는 백인호의 홈런으로 역전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삼성 에이스 김상엽의 묵직한 직구의 위력에 눌려 2-5로 패하고 말았다. 해태 V5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김재요 조선이공대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7628000436416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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