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덩치만큼 넉넉한 성격의 야전사령관 ,포수 장채근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by 2021S 2011. 6. 15.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V6  ‘일등공신’

1991시즌 해태 타이거즈의 V6는 음지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 한 숨은 보석이자 주포인 장채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로야구 팀이 우승을 하기 위해 가장 비중이 높은 역량 중 한 부분이 유능한 포수다. 집안의 어머니로서 역할과 유일하게 모든 야수를 바라보며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분관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포수론’은 야구 관계자라면 누구라도 수긍하는 부분이다.

해태 타이거즈가 어려운 살림살이 중에서도 10시즌 동안 V6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개성 강한 자식들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인 주포 김무종과 장채근이 홈을 굳건히 잘 지켜준 덕분이다.

언제나 다감하게 다가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가까이 지낸 장채근은 덩치만큼이나 넉넉한 성격으로 모두를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더불어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양면을 가진데다, 외형으로만 보면 믿기 어려운 섬세함과 영리함을 두루 갖춘 리더십을 발휘했던 유능한 선수였다.

1991년 해태 타이거즈는 연고우선 신인지명 선수로 진흥고-한양대출신 우완 오희주를 지명해 입단시켰다. 그리고 이 지명 사건은 최악의 선수 스카우트 실패의 오명을 남기고 관련자의 문책으로 이어지면서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당시 오희주와 경쟁을 벌였던 선수가 광주일고-인하대출신 김기태였다.

프로야구 스카우트 철칙 중 하나가 타자보다는 투수 위주의 선택이 우선이었으나 이 경우는 누가 보아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또 하나 쌍방울 창단이 없었다면 군상상고-연세대출신의 조규제도 해태의 자원이었으나 선택의 여지없이 쌍방울에게 조규제를 빼앗기고 말았다.

역사에 회자되었던 세 선수의 성적을 살펴보면 오희주가 해태 유니폼을 입고 1년을 뛰면서 남긴 성적은 6경기출장 1패에 방어율 5.84였다. 이듬해 LG로 현금 트레이드되어 3년 동안 3승3패2세이브의 성적을 남겼다.

좌타 거포로 클러치 히터의 상징 ‘캡틴’ 김기태는 쌍방울-삼성-SK에서 15시즌 동안 통산타율 0.294, 249홈런, 923타점을 기록했다. 박철우의 계보를 잇는 호남의 최고 좌타자 김기태는 국가대표를 역임하며 리딩 히터와 홈런킹을 차지한바있다.

좌완 파이어볼러 ‘승부사’ 조규제는 쌍방울-현대-SK-현대-KIA에서 15시즌 동안 54승153세이브 방어율 3.07을 기록했다. ‘깡’있는 조규제는 입단 첫해 9승7패27세이브, 133탈삼진, 방어율 1.64로 신인왕에 올랐고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한바있다.

2년 후 이 사건이 교훈이 되어 해태 타이거즈가 성영재 대신 이종범을 지명할 수 있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김재요 조선이공대학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814640043703401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