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10> 선동열의 등장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

by 2021S 2011. 5. 4.

1985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한국프로야구사를 빛낸 두 명의 걸출한 신인의 입단으로 들떠있었다.

광주일고-고려대를 거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과 광주상고-연세대를 거친 ‘재간둥이’ 이순철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선동열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만했다. 연봉 문제로 프로입단이냐 아마추어 잔류냐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던 선동열이 뒤늦게 입단에 합의했다. 당시로는 거액이자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계약금 1억원 시대를 열며 화려하게 프로야구 판에 뛰어 든 선동열의 선수 생활은 순탄하게 시작되지 못했다. 선동열은 입단 파문으로 인한 선수 자격 시비에 휘말려 후기부터 출장이 가능했다.

선동열의 첫 등판은 7월2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7회까지 김일융과 치열한 투수전을 펼치던 선동열은 8회 집중 5안타를 얻어맞고 5실점 패전투수가 되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그리고 2연패 이후인 7월11일 인천 청보전서 구원승을 따내면서 프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

선동열은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하기 전까지인, 1995시즌까지 대한민국의 ‘국보급 투수’로 명성을 떨치며 한국프로야구의 대들보가 되었다.

선동열은 11시즌 동안 146승40패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란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5시즌 0점대 방어율(0.28, 0.78, 0.49, 0.89, 0.99), 5시즌 1점대 방어율(1.13, 1.17, 1.21, 1.55, 1.70)을 기록했고 2점대 방어율은 2.73 단 한 차례였다.

완투승 68회, 완봉승 29회, 탈삼진 1698개, 4사구 404개를 기록했다. 피홈런은 딱 28개로 1년에 2.5개, 218명의 타자 당 1개꼴로 홈런을 허용했다.

 KIA 타이거즈 윤석민 등 선동열을 계승하고자하는 정통파 투수들은 선동열의 위대한 기록보다 투구내용을 본받았으면 한다. 선동열은 딱 두 가지 구질의 공밖에 던지지 않았다. ‘묵직한 직구와 칼날 같은 슬라이더’로 평가되는 148Km 정도의 속구와 138Km 정도의 슬라이더였다. 

“내 볼을 칠 수 없다”는 강한 자신감과 함께 등판이 없는 날에도 기록실에서 필자와 나란히 앉아 경기를 지켜보며 상대타자를 낱낱이 연구하고 분석하던 ‘거목’ 선동열을 현재의 후배들이 귀감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타이거즈맨으로는 전무후무하게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한 이순철은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재치있는 타자로 각광을 받으며, 타율 0.304, 12홈런 50타점 31도루의 성적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마운드에서는 이상윤, 타격에서는 김종모와 김봉연이란 차포의 부상·부진으로 59승52패1무로 전기 3위, 후기 3위, 통산 3위로 시즌을 마쳤다.

/김재요 조선이공대 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451760043244701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