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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2013.08.06

by 2021S 2013. 8. 7.

예향 원고 데드라인도 넘겼는데.. 손이 안 나간다.


겨우 마음 잡고 앉아서. 참고한다고 7월호 열어보다가 업뎃의 지경에 이르렀다.


7월호 주인공이 양현종. 하필 잡지 발간될 때에는 부상으로 자리에 없었다.


월간 마감, 이래서 어렵다.

 

오프라인에서만 접할 수 있는 기사라서 생각난 김에 온라인으로 옮겨오기.

 

옮긴 김에 옛날 사진도 덧붙이기.


 

 

 

이 사진은 최근 사진. 빌로우 불펜 피칭.

 

구경꾼들. 그 사이에 양현종.

 

 

 

 

 

예향 7월호.

 

 마운드 밖의 양현종은 막내 동생 같다.


 잘 웃고 장난도 곧잘 치는 곰살스러운 양현종에게 팬들은 ‘막내딸’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마운드 위의 양현종은 또 다른 양현종이 된다. 눈빛부터 달라진다. 장난기 가득하던 선한 눈은 사냥을 앞둔 호랑이의 눈빛이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 투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고 계속된 부진으로 전력 언저리로 밀려나기도 했다. 화려했던 2년과 끝없이 추락했던 2년의 시간을 얘기하던 양현종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막내딸이라는 별명에 딱 어울리는 싱글싱글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야구를 말하기도 했다.


 “마운드에서는 호랑이 같은 눈빛이 되더라”는 얘기에는 입이 함지박이 됐다.


 “진짜 눈빛이 바뀌냐?”고 되물으며 환하게 웃는 25살의 해맑은 청년이자 KIA는 물론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로 재도약하고 있는 승부욕 가득한 선수. 


 학강초-동성중-동성고를 거쳐 2007년 프로에 입단한 양현종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9년. 입단 후 두 번의 시즌에서 1승을 거뒀지만 2009년 3.15의 평균자책점으로 단숨에 12승 고지를 밟았다.


 양현종은 유망주에서 KIA V10의 중심이 됐다. 2010년에는 프로야구를 대표하던 ‘괴물’ 김광현과 다승왕 경쟁을 하며 16승을 챙겼다. 태극마크를 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무대에도 서면서 탄탄대로를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2011·2012년 양현종은 실패를 거듭했다. 2011년 7승을 거두며 겨우 체면치레는 했지만 평균자책점은 6.18까지 뛰어올랐다. 어깨부상까지 겹치면서 2012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승2패2홀드를 남기는데 그쳤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점에 서기도 했고 바닥에서 좌절을 맛보기도 한 양현종. 그가 섰던 정상은 자신을 흔들리게 한 자만이자 부활의 목표였다.


 양현종은 “2009년 개인 최고의 성적을 냈고 그에 따라 팀성적도 좋아지면서 자만했던 것은 사실이다. 몸관리에도 소홀했다.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됐다. 위에서 느껴본 기분과 자부심을 몰랐다면 노력은 했겠지만 정상에 다시 오르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양현종이 밟았던 정상은 상처이자 자부심이기도 하다. 화려했던 만큼 더 큰 그늘이 드리워졌다.


 “2년 동안 부진하면서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들고 소극적으로 돼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무서웠다. 주변에서도 내 눈치를 보느라 말도 많이 안 걸고…. 잘했을 때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줬는데 관심이 없다는 생각, 찬밥 신세라는 기분도 들고 여러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가족이 많이 걱정해줬는데 자랑스러운 친구 가족이 되고 싶었다.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그런 마음이 가장 컸다.”


 한치 양보 없는 경쟁의 무대. 성적이 곧 자신의 이름과 위치가 되는 곳. 양현종에게 프로야구 선수는 가슴 뿌듯하면서도 아픈 수식어다.


 “돈도 많이 벌고 사랑도 많이 받고 프로야구 선수들은 행복하다고들 한다. 물론 프로야구 선수라는 게 행복하기는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불행한 직업인 것 같다. 기분 안 좋을 때 더 조심스럽게 행동을 해야하고 어려움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 성적이 좋이 않은 그 외의 선수에게는 잔인한 곳이다.”


 실패의 순간을 넘으면서 양현종에게 마운드는 더욱 애틋한 곳이 됐다. 간절한 마음으로 맞은 2013년에는 자신감도 더해졌다. ‘변화구 컨트롤’은 변화의 키워드다.


 “올 시즌을 위해 훈련도 진짜 많이 했는데 스스로 느낀 게 더 컸다. 변화구 컨트롤이 잡힌 게 가장 큰 변화다.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면서 투구수도 줄어들고 자신감있게 승부를 하고 있다. 커터 그립도 도움이 됐다. 주변에서 던지지 말라는 얘기도 했는데 나름대로는 이걸 언제가 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늘 공을 잡으면서 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깨가 괜찮고 던지다 보니까 생각대로 잘 되는 것 같다. 준비도 많이 했지만 자신감이 우선이다. 타자들이 치면 어떻게 하나 볼이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 없이 자신있게 변화구를 구사하려고 한다.”


 컨트롤 난조로 ‘양현종=볼넷’이라는 쑥스러운 공식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투수 양현종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단어는 볼넷이다.


 “볼넷을 많이 내주기는 하지만 볼넷이 가장 싫다. 상대가 힘 하나 안쓰고 걸어나가는 자체가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한다. 내가 상대에게 졌다는 것에 가장 화난다. 도루와 폭투도 그런 의미에서 화가 난다. 승부욕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는데 프로에 오면서 승부욕이 강해진 것 같다. 내가 이겨야 상대가 지고, 상대가 져야 내가 이기는 것이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이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양현종에게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청소년대표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2006년,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성고 2학년 시절인 2005년에도 마운드에 올라 전국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지만 1년 선배인 한기주라는 큰 산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우승을 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한)기주 형이 있어서 주축이 되기보다는 돕는 역할이었다. 청소년 대표에서는 (김)광현, (임)태훈이와 주축이 돼서 대표팀을 이끌면서 서로 의지하고 으쌰으쌰하면서 우승을 했다. 우리 힘으로 해냈다는 것. 그런 게 처음이라서 가장 기억이 난다.”


 ‘내 손으로 시작해서 내 손으로 끝냈다’는 성취감. 그래서 프로야구 처음으로 완봉승을 거두었던 2010년 6월2일도 양현종에게는 잊지 못할 날로 남아있다.


 올 시즌 양현종의 목표는 거창하면서도 거창하지 않다. 개인 목표는 따로 세우지 않았다. 팀의 우승이 간절하게 바라는 목표다.


 “목표는 없다. 무조건 우승이다. 다시 우승을 하고 싶다. 굳이 개인 목표라고 하면 최다이닝을 소화하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너무 내 역할을 못했다. 이닝을 많이 소화하지 못해서 중간 투수들을 힘들게 했다. 많이 미안했다. 내가 선발로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책임져서 중간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싶다.”


 2년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양현종 개인의 소박한 꿈. 프로야구 선수 양현종으로서의 꿈도 소박하다. 프로야구 최고의 좌완, 국가대표 이런 수식어보다는 ‘타이거즈의 선수’를 자신의 이름 앞에 남겨놓고 싶다.


 “이종범 선배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게 나의 꿈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으면 더 좋겠지만 다른 곳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살고, 야구를 했던 곳에서 응원을 받고 인정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양현종은 KIA 팬들에게 희망의 이름이기도 했고 애증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일본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타선을 상대로 거침없이 공을 뿌리며 팬들의 가슴에 자부심을 심어주기도 했고 아웃카운트 하나 잡아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팬들의 고개를 숙이게도 했다.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 양현종, 지옥같던 실패를 딛고 2013시즌의 반전을 위해 마운드에 선다.


/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먼지 쌓인 폴더에서 끄집어 온 사진.

 

 

2010년 미야자키.

 

좌완 셋이서 뭔가를 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장난질이다.

 

마운드에서는 근엄한 투수님들이지만. 마운드 밖에서는 그냥 딱 그 나이 장난꾸러기들.

 

 

 

 

저 방망이의 주인공은. 박상혁.

 

투수로 스프링 캠프를 갔었던 박상혁. 지금은 NC의 좌타자이다.

 

 

 

 

 

 

보너스 사진.

 

경기가 끝난 뒤 김진우 인터뷰를 하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 퇴근 본긍 최향남.

 

 

 

 

얼핏 인터뷰 하고 있는 윤 마무리.

 

 

윤석민이 마무리행에 대해 얘기하면서 가장 먼저 꺼내놓은 말은... “잘한 일인지 모르겠네”

 

본인에게는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중요한 해이고 팀에게도 윤석민 마무리는 쓸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이기 때문에.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자기 공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선발진도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던 터라. 

 

현재는 마무리 윤석민이 최상의 4강 시나리오이기는 하다. 물론 양현종·빌로우 두 선수의 경기 결과에 따라서는 돌이킬 수 없는 수가 될 수도 있다. 


흠... 순간.. 앞뒤 안 가리고 주먹이 나간 적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신중하고 꼼꼼한 선수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즌, 윤석민이 어려운 선택을 했다. 

 

앞으로 두 경기가 올 시즌의 승부처. .. 아 매번 승부처 승부처라고 말하는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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