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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57

타이거즈 V2, 김정수 KS 3승 ‘가을 까치’ 등장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11> 한국프로야구 1986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방식은 전년도 가을축제를 무산시켜버린 삼성 라이온즈 때문에 또다시 제도가 바뀌었다.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에 바로 진출하고, 전·후기 중 한 번만 2위 안에 들면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최대 수혜자는 해태 타이거즈였는데 해태는 이러한 방식으로 3연패를 하게 된다. 1986년 해태는 전·후기 모두 2위를 차지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전·후기 각각 1위인 삼성 라이온즈와 OB 베어스가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프로야구사상 최초로 치러진 플레이오프전서 삼성은 OB를 3승2패(1-0, 3-5, 0-2, 2-1, 7-3)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무등경기장에서 펼쳐진 한국시리즈 1차전서는 해태가 연장11회말 2사 후에 김시진을 상대.. 2011. 5. 11.
<10> 선동열의 등장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 1985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한국프로야구사를 빛낸 두 명의 걸출한 신인의 입단으로 들떠있었다. 광주일고-고려대를 거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과 광주상고-연세대를 거친 ‘재간둥이’ 이순철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선동열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만했다. 연봉 문제로 프로입단이냐 아마추어 잔류냐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던 선동열이 뒤늦게 입단에 합의했다. 당시로는 거액이자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계약금 1억원 시대를 열며 화려하게 프로야구 판에 뛰어 든 선동열의 선수 생활은 순탄하게 시작되지 못했다. 선동열은 입단 파문으로 인한 선수 자격 시비에 휘말려 후기부터 출장이 가능했다. 선동열의 첫 등판은 7월2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7회까지 김일융과 치열한 투수전을 펼치던 선동.. 2011. 5. 4.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30년] <9> 맥빠진 시즌 1985 한국프로야구 4년차를 맞이한 1985년의 챔피언 결정방식은 전년도 삼성 라이온즈가 보여준 ‘비신사적인 플레이’의 재현을 제어하기 위해 종합승률제로 바뀌었다. 종합승률제는 (1)전·후기 종합승률 1위를 차지한 팀은 무조건 한국 시리즈에 올라가고 (2)종합승률 1위 팀이 전·후기 중 한 기를 우승하고 종합승률 2위 팀이 나머지 기 우승을 차지했을 경우 양 팀 간에 한국시리즈를 펼치며 (3)종합승률 1위와 전·후기 우승팀이 모두 다를 경우(1984년의 성적이 바로 이런 예에 해당) 전·후기 우승팀 간에 플레이오프를 거쳐 그 승자가 승률 1위 팀과 한국시리즈를 거행하며 (4)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할 경우 한국시리즈를 치르지 않고 우승이 확정되기로 한 제도였다. 그런데 삼성 라이온즈 때문에 그토록 머리.. 2011. 5. 2.
[프로야구30년 기아타이거즈30년]<8> 해태 ‘불고기 화형식’ 1984시즌 해태 타이거즈는 전년도 우승의 프리미엄으로 공식 개막전을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갖게 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전년도 최하위 롯데 자이언츠를 홈으로 불러들여 2경기 연속 완봉승(1-0, 2-0)을 거두며 상큼하게 출발했다. 이 두 경기에서 팀 주력 투수인 이상윤과 김용남은 각각 5피안타와 4피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개막전에서 이상윤과 최동원의 피 말리는 완투대결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 시리즈 2연패 꿈은 MBC 청룡과의 첫 원정 3연전서 내리 3연패(1-2, 3-4, 1-7)를 당하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3연패란 기록도 그렇지만 완봉승을 거둔 이상윤이 불과 이틀을 쉬고 사흘 만에 구원투수로 나서 4이닝 이상을 던지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김용남 역시 이틀을 쉬고 사흘.. 2011. 4. 28.
[프로야구30년 기아타이거즈30년]<7> 1984 KS ‘삼성의 굴욕’ 한국프로야구 3년차를 맞이한 1984년의 챔피언 결정방식은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 간의 7전4선승제의 한국 시리즈를 펼쳐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전기 우승팀은 경북·대구연고의 삼성 라이온즈였고, 후기 우승팀은 경남·부산연고의 롯데 자이언츠였다. 롯데 자이언츠는 7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4승3패(4-0, 2-8, 3-2, 0-7, 2-3, 6-1, 6-4)로 대망의 패권을 차지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으로 종지부를 찍은 1984년의 한국 시리즈는 프로야구계에는 새옹지마의 교훈을 심어주고, 삼성 라이온즈에게는 씻기 어려운 치욕과 그룹의 명예를 실추시킨 한 시즌이 되고 말았다. 기필코 우승을 하겠다는 삼성 라이온즈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껄끄러운 상대 OB 베어스를 피하기 위해 욕을 .. 2011. 4. 26.
[프로야구30년 타이거즈 30년] <6> 타이거즈 KS 우승비결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 시리즈 우승 기회는 예상외로 빨리 찾아왔다. 삼성이나 롯데 같은 메이저 그룹의 방계회사 하나보다 매출액이 적은 해태그룹의 열악한 지원만으로는 우승은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스포츠는 변수가 많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으로 몇 가지 조건과 약간의 행운이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타이거즈가 우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찾아본다. 첫째는 이상윤이란 걸출한 투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광주일고-한양대를 거쳐 타이거즈의 원년 멤버로 입단한 이상윤은 원년에는 7승5패 방어율 3.88이란 성적을 냈지만, 1983년 신무기인 파워 커브의 위력을 보강해 20승10패6세이브 방어율 2.67이란 빼어난 성적으로 막강 마운드의 선봉에 섰다. 한국 시리즈에서도 2승2세이브에 무승부경기서 8이닝 1실점 호투로 그의 .. 2011. 4. 20.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5> 타이거즈 KS 첫 우승 한국프로야구 2년차를 맞이한 1983년의 챔피언 결정방식은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 간의 7전4선승제의 한국 시리즈를 펼쳐 최종 우승 팀을 가리는 것이었다. 전기 우승팀은 전라·광주연고의 해태 타이거즈였고, 후기 우승팀은 서울 연고의 MBC 청룡이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1차전부터 3연승(7-4, 8-4, 5-3) 후 4차전 1-1무승부 그리고 5차전 8-1승으로 1무 포함 4전 전승으로 1983년 챔프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1983년 한국 시리즈의 백미는 연장 15회까지 이어진 1-1 무승부 경기였다. 3연승의 해태가 에이스 이상윤을 투입해 쉽게 끝낼 것 같았던 시리즈가 이길환·오영일·하기룡으로 배수의 진을 친 MBC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연장 15회까지 가는 숨 막히는 혈투 끝에 1-1무승부가 된 장.. 2011. 4. 18.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4> 타이거즈 첫 게임 원년 해태 타이거즈의 선수 수는 몇 명이었을까? 2011년 현재 KIA 타이거즈의 등록선수 수는 투수 28명, 야수 33명의 합인 61명이다. 8개 구단이 대부분 60여 명 선으로 선수단을 구성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원년의 해태 타이거즈는 투수 6명, 야수 14명의 합인 20명으로 프로야구팀을 창단하여 리그에 참여했다. 투수 6명 중에는 김성한이 포함되어 있으니 김성한이 야수로 이동하면 투수는 고작 5명인 것이다. 코치는 조창수와 유남호 단 2명이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원년 멤버는 투수 강만식 김성한 김용남 방수원 신태중 이상윤, 야수는 김경훈 김봉연 김용만 김우근 김일권 김종모 김종윤 김준환 박전섭 임정면 조충열 차영화 최영조 홍순만 등이다. 해태의 김씨 일가는 원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 2011. 4. 14.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프로야구 30년을 맞아 광주일보에서 마련한 특집 칼럼입니다. 매주 화, 목요일 두 차례 연재 됩니다. 저도 잘 모르는 프로야구 옛날 모습들.. 이야기들.. 추억의 스타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1. 한국프로야구 출범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1842800428876011 2. 역사적인 개막전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2102000429296011 3. 원년 스타들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02534000429804011 필자 소개 김재요 교수는 조선이공대학 광전자정보과에서 32년째 전자공학을 강의하고 있다. 최초로 전공인 IT기술과 프로야구의 데이터를 접.. 2011.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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