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퇴장 당한 김응용 감독

by 2021S 2011. 8. 12.
<38>감독·코칭스태프 전원 퇴장 ‘초유의 사태’


1999시즌의 해태 타이거즈는 내우외란에 휩싸인 총체적 난국에 빠져 ‘달콤한 꿈’ 한 번 꾸어보지 못하고 드림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고 말았다.

해태는 2년 연속 40SP 이상을 기록하며 언터처블러로 성장한 ‘핵잠수함’ 임창용을 삼성 라이온즈에 팔아넘기고 마무리 불안으로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99시즌 ‘투수왕국’ 해태에서 10승대 투수가 단 한 명만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곽현희가 11승11패 방어율 6.15로 팀 내 최다승투수이자 에이스였으니 타이거즈 팬들의 그 해 여름이 얼마나 무더웠을지 짐작할 것이다.

4월에는 장성호·양준혁·홍현우·정성훈·김창희·샌더스·브릭스·이호준·박계원 등 타력의 힘으로 5할 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4월30일 해태의 주전 포수 최해식이 ‘해태 출신’ 문승훈 구심에게 판정 항의를 하다 퇴장당한 것을 빌미로 김응용 감독 포함 유남호·김성한·이상윤·장채근 등 5명의 코칭 스태프 전원이 집단 퇴장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사태 이후는 백약이 무효였다.

그리고 홈구장 만원사례 단 한 차례 없이 드림리그 최하위, 전 구단 승률로 ‘동향의 동지’ 쌍방울 레이더스에 이어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해태와 동반해 IMF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쌍방울은 ‘돌격’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최저 승률 0.188에 근접하는 0.224라는 참담한 성적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무등산 호랑이가 꼬리를 내리고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어둠이 짙은 무등산 자락에 한줄기 빛이 되어준 스타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장성호가 물오른 타격으로 타율 3위(0.342), 최다안타 5위(166), 출루율 5위(0.420)를 기록했고, 홍현우가 제4호 30-30클럽에 가입하는 활약을 해줬다. 이적생 양준혁은 타율 0.323 32홈런 105타점으로 이름값을 해주었다. 또 용병 타자 듀오였던 샌더스가 역대 팀 내 개인 최다홈런인 40홈런, 브릭스가 23홈런 포함 총 210홈런으로 팀 최다홈런 신기록을 작성한 것이 위안거리였다.

또한 광주일고 출신 루키 정성훈이 규정타석을 채우며 0.292에 107안타로 두산 홍성흔과 신인왕 경쟁을 벌였고, 유동훈과 장일현 등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이강철이 FA로 부잣집 사자의 등을 타고 가난한 호랑이 굴을 떠났고, 양준혁이 한 시즌 만에 LG로 되팔아넘겨져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강철의 10시즌 동안 성적은 방어율 3.17 132승96패19S 탈삼진 1454개였다.

또 하나 6월10일 위암 투병 중이던 ‘사슴 눈망울을 닮은’ 김상진이 강남성모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22세, 너무나 짧은 생이었다. 그가 떠난 지 10년, 그가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우뚝 서서 감격의 V9의 피날레를 장식한 지 12년이나 지난, 2009년에야 KIA 타이거즈는 그의 영전에 V10의 우승 트로피를 바칠 수 있었다.

/김재요 조선이공대교수.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1307480044330801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