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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심안쫄이 좋은 심안쫄

by 2021S 2014. 5. 10.

 

 

 

업뎃해야지 하다가.. 미루고 있었던. 예향 4월호에 썼던 심동섭 인터뷰다.

타이밍이라고. 심동섭이 슈퍼 세이브를 했으니..

월간 제작이 어려운 게 마감시간.. 막상 예향이 나왔을 때 심동섭은 재활조에 있었다. 풀타임이 목표라고 했었는데...

앞으로 남은 시즌을 풀타임으로 소화하길.

 

경기가 끝난 후.

6일 쉬고 던졌는데 잘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던 심동섭.

물을 못 마셔서 목이 말라 죽는 줄 알았다고 또 웃는다.

연장 가서 물이 다 떨어졌다나..

야구를 못해서 목들이 타기는 했나보네라고 농담을 했더니. 뾰루퉁 이모티콘에 “잘할꺼거든요ㅋㅋㅋ”라고 보내왔다. 그리고 또 헤헤.

대화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  그런 에너지가 있는 선수다.  ^^

 

 

괴짜 슛돌이가 ‘호랑이 군단’의 믿을맨이 됐다. 


KIA 타이거즈의 투수 심동섭이 말하는 심동섭은 악동이다. 괜한 심술로 친구들을 괴롭히고 공부와는 담쌓고 지내던 괴짜이자 악동이었다.

학창시절 축구를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매일같이 공을 차고 다니던 ‘슛돌이’이기도 했다. 야구는 맛있는 간식에 홀려 우연히 시작한 놀이었다.

화정초에서 야구부원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던 곳. 그곳에서 먹은 간식이 괴짜 슛돌이 심동섭의 인생을 바꿨다.

 간식으로 나온 빵 맛에 반해 덜컥 야구를 한다고 나섰고 야구선수 심동섭의 역사가 시작됐다.

심동섭이 말하는 또 다른 심동섭은 그냥 그런 야구 선수였다. 특별하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냥 공을 치고 던지던 선수였다.

광주일고 1학년 때 심동섭의 야구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이다. 황당한 사고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땅을 잘못 차면서 발가락이 골절됐다. 야구선수가 축구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황당한 사고였다.

어쩔 수 없이 반년 가량 운동을 쉬게 됐던 그때. 훌쩍 키도 자라고 몸도 불었다. 힘이 붙으면서 심동섭의 야구에도 속도가 붙었다.


심동섭은 “야구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만 있었지 사실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야구를 못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엄지발가락이 부러졌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하다가 쇄골이 부러져서 수술도 했었다”며 “축구부에서 간식으로 유혹을 했으면 축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축구는 잘하기는 하는데 아마 계속 축구를 했다면 매일 아프기나 하고 프로 선수는 못됐을 것 같다”고 웃었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평범하지도 않았던 심동섭의 학창시절이다.


괴짜 슛돌이가 프로의 꿈을 이룬 것은 2010년. 고향팀 KIA의 1차 지명을 받으면서 학생 심동섭은 프로선수 심동섭이 됐다.

그러나 ‘믿을맨’ 심동섭이 있기까지 몇 차례 위기가 있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입단 첫해 속을 태워야 해야 했던 심동섭은 비로소 마운드가 익숙해질 때쯤 팔꿈치 부상으로 다시 또 주저앉아야 했다.


심동섭은 “팔꿈치가 아파서 재활조가 됐었다. 2군 복귀 하루를 앞두고 다시 통증이 심해졌었다. 그 사실에 화가 나서 글러브를 집어던졌던 기억이 난다”며 “3년차 때 많이 아팠는데 참을 만했다. 그렇게 크게 이상이 있는 줄 몰랐고 공을 던지고 싶어서 아픈 걸 숨기기도 했다. 언젠가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참고 했는데 결국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구가 좋아서 또 야구를 잘 몰라서 결국 2012시즌 중반 수술대에 오르게 됐고 힘겨운 재활의 시간이 찾아왔다. 심동섭에게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의 기억이다.


심동섭은 “야구도 보기 싫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재활만 하니까 스트레스도 받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부모님께서 야구 좀 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야구가 보기 싫어서 부모님과 많이 다투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 야구를 보면 공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에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던 6개월의 시간이 지나 공을 다시 잡게 되면서 다시 마음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마운드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재활의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 아픔의 시간을 통해서 심동섭은 야구를 더 사랑하게 됐다. 자기 자신도 더 사랑하게 됐다.


심동섭은 “수술하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했었다. 아파보고 나니 마운드가 더욱 특별한 곳이 됐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철이 든 것 같다. 무엇보다 ‘아프지 말자’는 생각이 커졌다. 아프지 않아야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고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 몸관리에 신경 쓰게 된다. 무조건 욕심부리면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운동을 하면서 조절도 하고 관리도 하면서 야구를 하게 됐다. 간절함과 아프지 말자는 생각. 마음가짐이 가장 달라졌다”고 말했다.


잃어봤기에 그 소중함을 알게 된 야구이기에 마운드에 복귀한 2013년 7월30일은 심동섭에게 잊지 못할 하루로 남아있다.


2014시즌은 잊지 못할 해가 됐으면 하는 게 심동섭의 바람이다. 지난해 힘든 재활을 끝내고 마운드에 돌아왔지만 끝없이 추락했던 팀 성적을 보면서 심동섭의 마음이 편지 못했다. 욕심 많고 승부욕 강한 심동섭에게는 아쉬움이 가득한 한해였다.

올 시즌을 위해 심동섭은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심동섭은 “아예 처음부터 야구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했다. 릴리스 포인트도 다시 잡고 폼도 조금 바꿨다. 2011년에는 폼이 빠르고 공격적이었다면 지금은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람들이 봤을 때 편안하다는 느낌으로 공을 던지려고 한다. 제구력도 좋아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욕심 가득한 올 시즌이지만 특별한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아프지 않고 풀타임을 뛰는 게 유일한 목표다. 아프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공을 던지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에 대한 책임감도 올 시즌에는 더욱 커졌다.


심동섭은 “캠프를 하면서 김정수 코치님이 농담 식으로 ‘마무리 가능하지? 어센시오가 무너지면 너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정말 자신 있어서 나도 무조건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었다. 그게 농담일지 몰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심동섭에게 주어진 역할, 언제 어떻게 경기에 투입될지 모르는 불펜은 고된 자리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대접’을 받는 선발 투수들에 뒤에서 마당쇠 역할을 하는 게 이들이다. 경기가 끝나고 멋지게 환호를 하는 마무리에 비하면 그늘에 가려져 있는 자리이자 잘해야 본전인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도 심동섭은 자신에게 주어진 불펜 투수의 역할이 즐겁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고 매일 같이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심동섭은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급하게 몸을 풀다가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서 불펜투수들은 많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투수들이 선발이나 마무리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야구 할 때 만은 대우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고 지금은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불펜이다. 또 불펜 투수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공을 던지고 야구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시합을 하는 게 재미있다”고 활짝 웃었다.


3루에 주자가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강심장. 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 승부욕이 생긴다는 승부사. 그래서 팬들이 자신의 성에 주눅 들지 않는다는 뜻의 ‘쫄지 않는다’를 더해 만들어준 ‘심안쫄’이라는 애칭이 가장 좋다는 심동섭이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마지막 질문. 프로 5년차이지만 아직은 23살의 어린 선수이기도 한 그와 어울리는 답이 돌아왔다.


 “투수들이 볼볼볼 한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쫄아서 볼을 던지는 게 아니라 진짜 제구가 안 돼서 그런 거예요. 그런 것이니까 ‘심장이 약하다’ 이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마운드에서는 정말 자신 있어요. 싸움닭, 강심장 뭐 이런 선수로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심안쫄이라는 별명 완젼 좋죠!”
/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사진.


사진을 찍던 순간의.. 바람과 사람들 표정, 목소리까지 생생하다.


클로버가 가득했던 차탄구장. 재활 막바지였던 심동섭과 한기주가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공을 받던 한기주도 기분이 좋았는지.. 유난히 많이 웃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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