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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KIA 타이거즈 출범 [프로야구 30년 타이거즈 30년

by 2021S 2011. 8. 25.
<42> 해태 타이거즈 ‘V9 신화’ 남기고 역사속으로
        KIA 의욕넘친 출발 … PO 진출 반발짝 부족


2001년은 해태 타이거즈가 ‘V9의 무등산 신화’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해태 정신’을 승계한 KIA 타이거즈가 출범한 새로운 원년이 되는 해다.

1997년 11월 IMF외환위기와 함께 모기업의 부도로 극심한 자금난에 허덕이며 선수를 팔아 근근이 연명하던 해태가 공개 매각에 나섰고, 2001년 5월 29일 기아 자동차(회장 정몽구)가 타이거즈 구단을 인수한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같은해 7월 31일 KBO의 최종 가입승인을 받아 KIA 타이거즈로 리그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아 자동차가 KBO에 제출한 팀 창단금액은 해태 인수대금 180억 원과 KBO 가입금 30억원 등 총 210억 원이었다.

이 절차를 끝으로 원년 멤버 해태 타이거즈가 20년 동안 호남야구를 대변하며 V9이란 전무후무한 대위업으로 한국프로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아쉬운 이별을 고하게 된 것이다.

7월 29일 광주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치러진 해태 타이거즈의 고별전서 해태는 장성호·이동수·김창희가 홈런을 날리며 분전했으나 구원투수 곽채진의 난조로 6-8로 대역전패를 당했다.

8월 2일 인천에서 SK 와이번스와 치러진 KIA 타이거즈의 신고전. 최익성의 축포가 쏘아졌지만 선발 최상덕이 무너지면서 KIA는 ‘호랑이 킬러’ 김원형에게 무릎을 꿇고 2-6으로 패하였다.

이로서 해태 타이거즈는 1983시즌 첫 우승의 개가를 올린 후 1986시즌부터 1989시즌까지 4연패를 이룩했고, 1991·1993·1996·1997시즌을 포함 통산 9차례나 정상에 올라 명문구단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해태 타이거즈는 20시즌 동안 1240승 54무 1021패(승률 0.543)의 ‘가죽’을 남기고 영욕으로 점철된 채 역사 속 전설로 남게 되었다.

2000시즌 말 ‘젊은 호랑이 재건’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김응용 감독에 이어 사령탑에 오른 ‘오리지널 해태 맨’ 김성한 감독의 의욕은 넘쳤다. 팀 전통인 끈끈한 조직력을 복원해 시즌 막판까지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만큼 저력을 보여주었다.

시즌 중반에 부잣집 KIA로의 인수, 일본 주니치로 외유 나갔던 이종범의 복귀, FA로 사자등을 탔던 이강철의 회귀 등은 선수단 사기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극도로 약화된 전력이 약 몇 첩 썼다고 금방 회복되어 우승을 넘볼 정도는 아니었다. 마운드에서는 최상덕(12승)만이 고군분투했을 뿐 지원군이 없었고, 전반기 철벽 마무리를 해주던 ‘돌 하루방’ 오봉옥 마저 후반기에는 지쳐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타력에서는 용병 산토스(26홈런)와 장성호(23홈런)가 분전했다.

2001시즌 타이거즈는 한화 이글스에 간발의 차로 밀려 60승5무68패(승률 0.469)로 종합 5위의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감했다.

<김재요 조선이공대 교수 한국야구기록연구회장>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1428080044479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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