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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추억. 기억

by 2021S 2019. 11. 26.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추억을 이야기하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너무 아프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빈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진을 찾았고, 그의 이야기를 적는다. 아프고도 그리운 이름이 될 김성훈. 

경기고  2학년 때 처음 챔피언스필드 덕아웃에서 만났다. 
아빠와 닮은 부분이 있지만 사실 엄마를 더 닮았다. 
처음에는 누구?? 이런 눈으로 보다가 이내 ‘아드님이 훈남’이라며 웃었다. 


그날 찍은 아빠와 아들이다.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하고. 김성훈은 수줍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었다. 

코치님께서 쓱 웃으며 “인터넷에 김민호 코치 아들 한번 검색해보세요”라고 하신 적이 있다. 
검색하니 ‘경기고 4강행 이끈 김민호 코치 아들 김성훈’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4강 주역을 챔피언스필드 덕아웃에서 만난 것이다. 

“아버지께서 기사 검색해 보라고 하셨다”라고 슬쩍 이야기를 해줬다. 김성훈은 놀란 표정으로 “정말 그러셨어요?”라고 물었다.  집에서는 야구 이야기도 잘 안 하신다면서...
스스로 좋은 야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묵묵히 기다린 아버지였다. 

2017년 신인드래프트. 고등학교 중간중간 어려움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반가웠던 이름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이번에는 한화 이글스 선수로 김성훈을 만났다. 
한화와 연습경기가 예정되어 있던 이날 아버지도, 나도 김성훈을 기다렸다. 
이날 경기조가 아니었던 김성훈은 훈련을 한 뒤 경기 도중에 킨 구장에 왔다. 



프로 유니폼을 입은 모습에 괜히 내가 더 흐뭇해했던 날. 
경기를 보면서 김성훈은 1루 덕아웃을 자꾸 살펴봤다. 아빠를 찾느라. 
“코치님이 안 보이신다”면서 아버지를 찾던 김성훈. 

 



공수교대 시간에 그라운드에서 김성훈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물 앞으로 달려간 김성훈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고. 선배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빠한테 안녕하십니까가 뭐냐면서. 

클리닝 타임 때 잠깐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졌다. 
같은 오키나와에 있으면서도 훈련 스케줄도 달랐고, KIA와 한화의 숙소가 끝과 끝이었다. 
연습 경기를 하면서 겨우 마주친 두 사람.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보다는 코치와 선수의 대화였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아들이 걱정이 됐을 아버지는 “편하게 하라”며 어깨를 두드려준 뒤 자리로 돌아갔다. 
손에 종이백 하나를 건네주고. 아들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챙겨왔을 아버지. 


김성훈은 “캠프에서 많이 배우고 있는데 요즘 뜻대로 야구가 되지 않아서 고민이 많다. 프로에 오니까 김민호 코치의 아들이라는 시선도 있고, 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부담을 갖는 것 같다. 많은 것을 여쭤보고 싶은데 억지로 자주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KIA 경기에 나오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아버지를 뵙게 돼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웃었다. 

종종 성훈이의 안부를 물으면서 프로데뷔 날을 기다리고, 응원을 했다. 
KIA와 경기 날이면 수줍게 인사를 하던 김성훈. 
와락 와서 아버지한테 안기는 것도 아니고, 다른 팀 코치님 뵙는 것처럼 인사를 하고 갔다. 

 

KIA전 선발 전날 덕아웃에서 코치님이 주인공이 됐다.  
사람들은 웃으면서 “내일 떨려서 경기 어떻게 보시느냐”며 코치님을 놀렸다.  
‘팀의 승리가 먼저’라는 코치님에게 사람들은 “성훈이는 호투를 하고 KIA는 승리를 하자”며 또 웃었다.  
  
미래가 너무 창창했기에. 할 일이 많았기에. 그리고 너무나 애틋했던 아빠와 아들이었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비통함’으로나 겨우 표현할 수 있을, 헤아릴 수도 없는 아픔에 가슴이 먹먹하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 아팠다.  
“차라리 힘들다고, 슬프다고 하시면 낫겠다”며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조문객들 밥을 챙기던 코치님은 “여기에 있으면 괜찮은데 이상하게 저기에 가면 눈물이 난다”고 빈소를 가리키며 허탈하게 웃었다.  
애써 담담한척하셨지만, 눈으로는 울고 있던 아버지.  

김성훈의 꿈을 지켜봤던 동료, 코치, 친구들이 올 때마다 사람들은 같이 울었다.  
각별했던 선배 이태양도 몇 번 영정 사진 앞을 다녀갔다. 멍하게 서 있다가 자리로 돌아가고... 
아침 발인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야 했던 한화 선수들. 다시 영정 사진 앞에 섰다.  
절을 하면서 선수들은 또 울었다. 끝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던 이태양은, 알뜰살뜰 신발 정리를 하고 음식을 나르던 강경학이 꼭 안고나서야 겨우 걸음을 뗐다.  

전날 빈소에서 대성통곡을 했던 김기태 감독은 사람들의 만류에 애를 태우다 늦은 밤 걸음을 해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아들 같은 조카였다.  
빈소가 차려지기 전에 가장 먼저 달려왔다는 경기고 선배 황대인은 둘째 날에도 늦은 밤까지 후배를 지켰다. 코치님은 “무슨 날을 샌다고 그러냐. 어서 친구들 데리고 가서 자라”고 웃으며 황대인을 보냈다.  

홀로 걸음을 한 민병헌과 창원에서 달려온 이명기 등등. 먼 걸음을 해준 사람들이 괜히 고마웠다.  
빈소를 지켜준 팬들의 조화도 감사했다. 스파이크가 놓인 빈소에는 한화, KIA뿐만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조화도 자리를 했다.  

조문객들이 돌아가고, 일을 봐주시던 분들도 퇴근하시고 난 뒤. 마지막 선수로 김재호가 왔다.  
해외에 있다가 급히 귀국해서 오느라 늦어진 걸음. 하지만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김재호의 눈물이 터졌다. 붉어진 눈으로 김재호는 그 늦은 시간에 숟가락을 들었다. 왔으니 밥 한 그릇은 다 먹어야 한다며. 

코치님은 밥을 먹는 제자 자랑을 했다. 김재호도 내가 ‘1호 제자’라면서 코치님 자랑을 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수비 이야기를 했다. 코치님은 유튜브에 올린 훈련 영상을 보여주라면서,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이렇게 하라고 웃었다. 영상을 보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것이라면서. 영상을 본 김재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훈련이 디테일해졌다며, 웃다가 또 울었다.  

코치님은 “앞으로 시간이 흘러가겠지만 어떻게 흘려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성훈이와 작별한 시간이 다가온다”며 자꾸 시계를 보셨다. 
그러면서 갈 길 멀다고, 빨리 일어나라고 김재호를 재촉했다. 하지만 김재호는 밥 먹고 가겠다고 한동안 자리를 지킨 뒤에야 일어섰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그래도 우리 잘 산 것 같다”던 코치님은 “잘못 산 것도 없는데”라며 슬픔을 삼켰다.  

1호 제자가 떠난 뒤에야 코치님은 아버지가 됐다.  
아들하고 술 한잔하겠다고 하셔서, 남은 이들이 빈소에 상을 챙겨드렸다.  
여기서 술 한잔하고 마지막으로 성훈이 옆에서 자겠다는 아버지.  
아들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강한 사람인데 그동안은 성훈이가 있어서 강했는데, 이제 많이 약해졌어. 많이 도와줘”라면서 코치님은 슬프게 웃었다.  
아빠와 아들 만의 시간을 위해, 남아있던 사람들이 돌아선 뒤에야. 강했던 아버지의 애끓는 울음이 터졌다.  


KBO리그 시상식을 보면서도 울컥울컥했다.  
특히 ‘우리가 아들들’이라는 박찬호의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연락을 했더니 박찬호가 “코치님이 언젠가 보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또 울컥하게 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들. 어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나. 그 어느 누구도, 많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대신할 수 없을 빈자리지만 많은 아들들이 그 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면 좋겠다. 


하나하나 적어놓으셨다는 수비 노트. 현장에서 그 내용 확인하겠습니다. 기다리고,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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