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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인연이라는 길에서

by 2021S 2020. 2. 11.

세상 넓으면서도 좁다.

사람의 인연도 그렇다. 인연의 폭이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다.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세상과 사람들. 

절대는 없는, 변화의 시간과 삶. 인생.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착하게 살아야 한다. 

야구 기자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살고 있다.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고. 오랜 시간 가족처럼 남아있는 인연도 있고. 

정말 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시간. 유난하게 이어지는 인연들이 있다. 

 

 

최현정이 그중 하나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팬보다는 모르는 팬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두산에서 시작해서 고양원더스를 거쳐 KIA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두산 막둥이 시절에 무등경기장 야구장 기자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나는 2군 경기를 보러갔고 최현정은 두산 경기 기록 담당을 하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KIA 선수가 되었다. 

최현정도 92라인의 한 명.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고 잘해줄 것도 없었는데 살갑게 지냈던 선수. 

하루는 최현정이 회사 앞까지 찾아왔다. 작별 인사를 하겠노라면서. 

몸도 아프고 일찍 야구를 그만두게 됐던 최현정. 

나한테는 직접 이야기를 하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며 최현정이 회사 앞에 왔었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는데. 

내가 오히려 더 고마웠던 날.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프로야구 선수라는 묵직한 타이틀 아래에는 보통의 청년들이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남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도 해주려고 한다. 그런 게 최현정에게는 고마웠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사들고 달려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광주를 떠나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연락이 왔다. 이래저래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해하고 광주 와서 밥도 한 번 먹었다. 

둥글둥글하니 순해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스타일이라. 선수 그만두면서 선수 입장에서 구단에 쓴소리도 많이 하고 선수들의 권리도 이야기하고 나갔다. ㅎ

 

그 뒤로 방송활동도 한다고 했는데 잘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유튜브 개설했다고 연락이 왔다. 

초심 잃지 말고 좋은 콘텐츠로 많이 활동했으면 좋겠다.  ^^

 

최현정 유튜브! 1회 주인공이 오늘 핫했던 서진용 ↓ 

 

야빠월드

 

www.youtube.com

최현정하면 기억나는 사람이 이범호다. 

대전 출신인 최현정이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이범호다. 

한화에서 했던 어린이 야구 교실을 갔었는데 그때 강사가 이범호였다. 이범호가 "너 야구 해야겠다"고 웃으면서 했던 말에 최현정은 정말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 그만둔다고 이야기하면서 최현정은 후회는 없다고 홀가분하다고 웃었다. 그런데 딱 하나 후회되고 안타까운 게 바로 이범호 선배님에게 "덕분에 이렇게 야구선수가 됐다"는 말을 못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팀에 있으면서도 최현정은 끝내 말을 하지 못 했었다. 잘 되어서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야구선수의 삶을 내려놓았다. 

나중에 이범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 적이 있다. 안 봐도 알 것이다.  이범호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표정 하면 생각나는 사람. 

박지훈도 은은한 인연이다. 

KIA 지명을 받은 날 박지훈은 '썩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ㅎ

지내보면 그냥 경상도 남자다. 말도 별로 없고 그냥 무표정. 

그런데 드래프트날 표정은 썩소가 아니라 뭉클함이었다. 

진짜 프로선수가 되니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났더란다. 눈물을 참으려다 보니 그런 표정이 나왔다고. 

어떻게 하다 어머님이 꽃집하시는 것을 알고 꽃배달 할 일 있으면 종종 연락을 드리는데... 어머님 참 좋으시다. (홍보를 해드리고 싶은데 천사플라워 (상인)이라는 이름만 알고... 어머님 개인 연락처라 ... ㅠ.ㅠ 나중에 가게 번호 확인해서! )

말 수 없는 아들 묵묵히 챙겨주셨을 모습 생각하니 박지훈의 표정이 이해가 됐다. 

표현을 잘했던 최현정과 달리 박지훈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딱 경상도 남자. 

표정도 크게 없고 말도 그냥 조용조용. 부끄러움도 많아서 누나라고도 잘 못 불렀다. 기자님이라고 하기에는 호칭이 애매하고 그냥 호칭 없는 사이? ㅎ

잘 됐으면 했는데 몇 년 동안 아프다가 결국 야구를 그만뒀다. 어려웠던 시절 좋은 모습 보여줬던 선수이고 많이 기대했던 선수라서 안타깝기도 하고. 

본인도 결정하면서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래도 도저히 몸이 안 되니까, 인정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될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다르니. 마음고생 많이 했다. 

지금은 '야구매니아'라는 야구 교실을 준비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여행매니아'ㅎ 

솔직히 재활하는 시간이 길어서 괜히 조심스러웠고, 재활하는 동안에는 많은 이야기를 못 했던 것 같다. 

은퇴하고 나서, 야구 교실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고생했다고 문자를 보냈었다. 

이후 몇 번 통화하고 사석에서 만날 자리가 있었는데 수줍게 고마웠다는 고백을 ㅎ. 

이쁨도 미움도 다 자기에게 나온다고. 반듯하고 열심히 했던 선수라 ...  나는 뭐 딱히 고맙게 잘해준 것도 없는데. 

 

매일 피 말리는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선수들. 극과 극을 오가면서 빛나는 순간을 살다가 어둠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조급함에 너무 달리다가 부상을 입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전쟁같은 순간을 사는 사람들이라. 그 옆에 있으면서 나도 맘을 졸이는 순간이 많다. 특히 오랜 시간 재활을 하는 선수들을 대할 때는 더 조심스럽다. 

마음과 다른 몸, 그 마음들도 이해되고. 괜히 부담을 주는 것 아닌가 말 건네기도 미안할 때도 있고.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어둠 속에 있다고 외면당한다는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고. 

사람의 마음, 인연은 정말 어렵고 복잡하다. 오랜만에 최현정의 연락을 받고 주저리주저리 글이 길어졌다. 

야구라는 것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이 많다. 보통의 학생, 일반 청년의 삶도 모르고 자신의 뜻인지 부모의 뜻인지 모르게 앞만 보고 야구가 전부라고 살아온 선수들이 많다. 

그래서 그 길을 벗어나야 할 때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무너진다. 그런 게 많이 안타깝다. '야구 선수'로만 사는 삶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지. 

일찍 다른 길로 가야 했지만 열심히 씩씩하게 몰랐던 세상을 배우면서 살고 있는 최현정과 박지훈.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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