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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AS

안녕으로는 부족한...

by 2021S 2020. 1. 6.

 

기사 AS 2020.01.06 After Service 또는 After Story  

곰이었다. 곰이었는데 예민한 곰. ㅎ

"빨리 계약하고 운동하러 가고 싶다"는 말을 몇 번 했다. 

그냥 챔피언스필드 나가서 하라고 웃었더니 어떻게 그러냐고 곰처럼 그랬다. 

시즌 끝나고 당연히 KIA선수처럼 라커룸에 짐을 다 두고 나왔는데. 

정작 맷 윌리엄스 감독 상견례 날에는 홀로 사복을 입고 왔다. 

마음은 KIA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는 그런, 곰 같은 성향 탓에. 

어렸을 때 감독님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걸 봤다면서. 당시 애리조나 타순 7번까지는 기억한다면서 웃었다. 

감독님에게 팬이었다는 말도 했었다. 

감독님하고 같이 우승해보면 좋겠다더니. 

아파도 참 곰처럼 묵묵했다. 

올 시즌 시작하면서 빗맞은 타구에 손바닥 통증이 생겼는데. 그걸 시즌 중반에 알았다. 말을 안 하니까 알 수가 없다. 

많은 선수들이 성적 안 나오면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다고 광고를 한다. 과장까지 더해서. 그런데 안치홍은 아프다고 하면 진짜 아픈 것이었다. 

사구를 맞아도 휙휙 뛰어나가던 선수니까. 그래서 지난해 발목 쪽에 공에 맞았을 때, 베이스 러닝하다가 손을 다쳤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엄살 없는 선수가 너무 아파하니까. 

결론은 그냥 내가 못했다고 끝나는 선수. 

내심 주장이 되어서 좋아했던 선수. 외향적으로 활발한 성격이 아니라고 미안해하면서도 뒤에 후배들 챙기고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그랬다. 

선수들은 우리 치홍이, 우리 치홍이 형이라고 부른다. 

 

곰인데 예민하다. 욕심이 많아서 예민하기도 했고. 

수훈선수가 돼서 인터뷰를 해도 심통인 표정인 날이 종종 있었다. 잘한 것도 잘한 거지만 실수하고 잘못한 것도 생각하느라. 잘했지만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안치홍은 속상해했다. 

매년 꾸준히 기부를 하고 꾸준히 성적을 내고 그랬어도 티는 많이 안 났다. 여우처럼 그렇게 못하고 살던 선수라. 

대표팀 탈락한 시즌에는 옆에서 보기에 참 마음이 그럴 정도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덕아웃에서는 허허거리면서 제 몫을 하던 선수였다. 

이번 겨울에도 멀쩡한 척은 해도 몸이 자꾸 고장 났다. 

자선 일일호프에 오려고 했는데 그날 오전 열이 펄펄 나서 응급실에 갔다. A형 독감이라고 입원을 했다. 

그냥 안부 인사 겸 전화를 건 적이 있는데.  3일 뒤에 행사가 있는데 오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광주에서 유소년 선수를 대상으로 재능 기부 활동을 한다고 그랬다. 내가 전화 안 했으면 그런 것 말도 안 했을 선수. 

그런데 그때 서울 휴가가 잡혀있던 때였다. 평소 부탁도 안 하는 선수가 하는 부탁이라 들어주고 싶었는데... 서울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때부터 떼를 썼다. 언제 뭐 부탁하느냐 정말 안 올 거냐 내가 이렇게 간절히 비는데 안 되는 거냐 다시는 나 안 볼 생각이냐.. 모처럼 안치홍답게 떼를 썼다. 내가 전화 안 했으면 행사하고도 말도 안 했을 거면서. 

서울 다녀와서 물어봤더니 행사를 못했다. 또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노로바이러스에 간 수치도 많이 올랐다고. 

예민한 성격에, 마음이 힘드니 몸까지 자꾸 아팠다. 

몇 번 통화를 하다 한번 만났을 때는 사람을 웃겼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건지 기억은 안 나는데...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했을 때 나지완 특집판을 만든 적이 있다. 

신문을 펼치면 이렇게. 

두 면을 통으로 터서 편집을 했다. 나지완이 신문을 들고 와서 선수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 편집상도 받았던 작품. 

그 기사 이야기를 하다가 안치홍이 자기도 그렇게 신문 한번 만들어달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자기가 직접 편집 지시(?)를 했다. 

자기 신인 시절부터 해서 연도별로 타격 사진을 나열해달라고 했다. 20년은 책임진다고 했으니 나머지 칸은 남겨두고...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호응을 해줬고, 나는 나중에 계약 끝나면 그렇게 편집을 해주겠다면서 웃었다. 

하지만 안치홍의 FA 계약 기사에는 롯데 유니폼을 입은 안치홍의 사진이 들어갔다.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힘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물론 그 마음까지는 다 알 수 없겠지만.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잘 하라고 응원을 해줬다. 

정신없이 기사를 쓰고 나서 현실로 돌아오니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가족처럼 동료처럼, 함께 그라운드에서 성장했던 이들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동시에 떠났다. 초보 기자 시절 나도 의지를 많이 했던 선수들. 별일 없어도 전화해서 이런저런 솔직한 속내도 이야기하던 사람들. 곰들이라서 더 안타까웠던 이들.

곧 누나도 은퇴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누군가의 농담에 같이 웃다가 .... 한 세대가 저무는 느낌이라고 말하고 같이 울었다 ㅎ. 

"오늘 꿈을 잃었어요. 내 꿈이 프랜차이즈 스타였는데"라는 한 젊은 선수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는 밤이다. 

 

애 많이 썼다. 드럽게 운도 없던 사람아. 신나게 멋있게, 많이 웃고 존중받으면서. 많이 사랑받고, 주면서 그렇게 그라운드에서 빛나라.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578317400686612011

 

‘FA 안치홍’ 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호랑이 군단’의 프랜차이즈로 사랑을 받았던 안치홍이 광주를 떠난다. 2020시즌 안치홍은 롯데 유니폼을 입고 사직 그라운드에 선다. 롯데 자이언츠는 6일 안치홍과 계약 기간 2년 최대 26억원(계약금 14억 2000만원, 연봉총액 5억8000만원, 옵션 총액 6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일반적인 FA 계약과는 다른 ‘2+2’가 이번 계약의 핵심이다.2020·2021시즌 롯데 선수로 뛰는 안치홍은 2022년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상호 계…

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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