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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아프지 않고 성숙하기, 불가능의 무엇…버텨라 이의리

by 2021S 2023. 10. 10.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말이 참 싫다. 왜 성숙해지려면 아파야 하는가, 청춘은 왜 아파야 하는가. 

더 싫은 게 뭐냐면 저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기자실 알바생이 22살이다. 부럽지만 부럽지 않았다. 

그 나이는 부러운데 20대는 돌아보면 너무 고단했다. 

그래서 기자실에 있는 프런트와 기자에게 물었다.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돌아가겠냐고? 한 명은 바로 NO. 한 명은 돌아는 가는데 단, 군대 제대한 후로 간다고. 군대는 죽어도 다시 가시는 싫다고.

단호하게 NO를 외쳤던 이는 돌아가게 된다면 5~6세 시절로 가고 싶단다. 돌아보면 학교 가기 전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나도 20대는 싫고 간다면 아예 고등학생으로 돌아가서 인생 설계를 아예 다시 하고 싶다. 기자는 안 하고ㅋ. 아 하고 싶을까?  모르겠고. 아니라면 20대는 싫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시기. 매일이 걱정. 미래라는 게 장밋빛이 아니라 불확실함이니까. 조마조마하게 살았던 것 같다. 

가슴 졸이면서 입사 시험을 보고 더 가슴 졸이면서 결과를 기다리던 시간들. 직장인이 돼서도 고단함이었다. 사건기자 시절 내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그때는 선배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사회 초년생이 무슨 의지와 힘이 있나. 싫은 것도 내색 못하고 하던 시절. 술 안 좋아하고 못 하는 나에게 그 당시의 술도 정말 죽을 맛이었다. 

지금은 아닌 것에 대해 No라고 할 수 있고, 내가 더 많은 것을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다. 5000원도 고민하면서 쓰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큰 고민 없이 선물을 할 수 있는 게 내 큰 행복 중 하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야구 선수들은 , 많은 스포츠 선수들은 일반 사람들의 20대의 삶을 더 농축해서 사는 것 같다. 삶의 밀도가 높다. 길지 않은 직업의 시간.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네 3~4년을 선수들은 1년에 몰아서 산다. 

10대 후반부터 엄청난 부담감 속에서 매일 경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일을 걱정하면서. 가을 낭만이라고 하지만, 가을이 오면 당장 내년 계약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추운 가을. 

화려한 직업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어둠도 짙고 부담도 많고. 

그리고 매년 느끼지만... 공정해야 할, 정정당당해야 할 스포츠이지만. 그 이면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 

단순히 실력으로 성공한다? 그럴 수 있는 종목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모든 종목에는 룰이 있다. 엄격하다. 룰을 지키는 게 직업인 사람들인데 그들이 사는 곳이 룰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20~30대 시간을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선수들.  매일 이기는 선수는 없다. 타자도 10번 나가서 3번 이기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투수도 20승을 하면 당장 MVP 후보다. 

정규시즌 우승팀 LG의 승률도 0.609. 열심히 1위를 달렸지만 4번은 졌다. 

당장 오늘의 영웅이 내일의 역적이 되는 곳이기도 하니. 상처를 받는다. 안 받는 선수는 없다. 그런데 공정한 싸움에서의 패배라면 덜 아플 것이다. 내 탓만 하면 된다. 내가 더 노력하면 된다. 

그렇지 않은 아픔이라서 이의리를 보는 이들이 아프다. 괜찮을 수 있냐고? 당장 나라도 잠 못 잘 것 같다. 

선배라는 사람들이 참 못 나고 못 됐다. 눈에 뻔히 보였던 빌드업 과정도 그렇고. 아.. 나이 많다고 무조건 어른 아니고 선배 아니다. 그러라고 준 권한이 아닌데. 의무 같은 권한을 권리로 사용한 못된 사례. 더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한 룰이 필요하다.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20대를 돌아보면 작은 것도 더 아팠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아픔도 쌓이고 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아픔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짧다. 이게 어떻게 보면 성숙이다. 

아프지만 둔감해지는 것? 그리고 덜 아프기 위해 수동적이거나 열정을 줄이게 되는 것?

그래서 성숙은 슬픈 말인 것도 같다. 슬픔과 아픔이 쌓어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니. 기적처럼 아무 일도 없었는데 불현듯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어쩌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래도 간접 경험으로 좋은 말과 글로 또는 명상으로 성숙해진다면 더없이 좋을 테고. 

청춘이 최대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서히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성숙해지면 좋겠다. 

나도 인생 바닥을 찍은 최악의 시간을 겪고 나서 강제로 성숙해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은 그냥 감정이 무뎌진 것이다. 

저기 밑에 바닥을 찍어본 만큼 웬만한 고통에는 큰 반응이 없다. 사람이 그래서 더 고요하고 평온해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게 성숙이다. 

그리고 .. 또 지나 보니 순간순간을 불같이 화내고 가슴 저리게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건 데이터가 쌓여야 아는 감정인데. 

세상에 절대적인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결국은 지나간다. 그리고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지나 보니 행운이었던 경우도 있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게 불운이었던 경우도 있다. 악연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은인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최악의 악연이 되기도 한다. 

이의리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인생은 단편이 모여 만들어지는 장편이다. 지금 넘기는 책장이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장에 쓰일 이야기가 중요하다. 

충분히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 좋겠다. 

 

오늘 덕아웃에서 카메라 들고 있다가 눈이 커졌다. 박찬호도 참 독하다. 뛰고 싶어서 어찌 경기를 볼까 싶지만, 그렇게라도 뛰다가 빨리 건강하게 돌아오길. 

 

인생 뭐라고. 결국 남는 것 이름이다. 어떤 이름으로 남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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